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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익 미소, 좀 어색해도 좋아

by 냉이꽃


아기가 웃으면 세상 누구라도 같이 웃게 된다. 그렇게 미소 짓게 되는 작품이 있다. 아르카익 미소를 담은 그리스 미술이다. 그리스 암흑기를 지나 클래식기로 넘어가기 전 200여 년간의 문화다.


암흑기는 침묵하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고 죽어있는 시기가 아니다. 서양의 경우 중세 암흑기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있었고, 그림에 반영되고 있었으며, 지식인이 성장하고 있었다. 300여 년의 그리스 암흑기도 마찬가지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하듯이 역사도 그렇고, 한 인간의 개인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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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흔적, 지중해의 햇살이 섞여있는 아르카익 미소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왜 아르카익 미소일까?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기원전 1100년 경 지중해의 아름다운 문화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후 300여 년간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암흑기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철기 문화로 바뀌고 있었고,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전승되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국가의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르카익기는 대략 기원전 650년~480년 경이다. 그리스는 이 시기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라는 영웅적 인간상이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었다. 인간은 신의 도구가 아니었다. 도시국가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요구되었다. 인간은 강인해야 했고, 이상적인 육체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초월하는 평정심을 가져야 했다. 그들의 운동 경기에는 올리브유를 바른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들이 수두룩했고, 수많은 청년들이 경기 중에 죽어 나갔다. 그 용기와 당당함과 낙천성, 시대정신에 대한 믿음이 아르카익 미소로 나타났다.


아르카익 미소는 고졸미로 평가된다. 세련되지는 않다.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명쾌하고 현실적이며 밝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같이 미소 짓게 된다. 아래의 작품들은 아테네 근교의 케라케이코스 묘지에서 발견된 묘비의 조각이다. 어리고 풋풋한 미소년들이 많다. 조각에는 눈물도 아쉬움도 고통도 없다. 영광스럽고 명예롭게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이 미소는 그리스 미술이 클래식기로 넘어가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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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청년의 묘비, 기원전 510-500년 ⓒ 아테네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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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운동선수 묘비, 기원전 550-540 ⓒ 아테네 국립박물관/ 말탄 기수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나도 지금 어색하게 웃고 있지만


나의 기록이 끊어진 것 같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되는 것이 없고, 하루 세끼 밥 먹고 잠만 자는 것 같아도 나는 길 위를 걷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절망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희망이었다.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늙으면 아무 짝에 쓸모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AI 시대에 늙은이는 도태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그 생각이 나를 죽게 하였다. 나의 삶에 무책임한 것이고 나이를 핑계 대며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이었다. 절망에 빠지고 내면이 붕괴되는 것은 두렵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암중모색의 시간, 나도 지금 나의 미소가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서툰 한 걸음을 걷는다. 길 끝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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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전에 바쳐진 봉헌물이다. 작은 여신과 올빼미기 이렇게 예쁠 수가.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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