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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의 봄과 나의 욕망

욕망에 대한 명상

by 냉이꽃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담고 있다. 사랑, 탐욕, 질투, 비정함, 추악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간세상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이면서 더없이 인간적이다. 그래서 끌리기도 하고, 이게 뭐냐 싶기도 했다.


내 안의 욕망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의 솔직함이 부러웠다. 치부를 숨기기 시작하면 위선의 위선이 되어 벗어날 길이 없었다. 감추지 않는다는 것, 덮어두지 않는다는 것은 큰 용기였다. 보티첼리의 봄을 보며 생각한다.


제목 없음.jpg 보티첼리 <봄> 1480년 작, 우피치 미술관 소장, 작품출처 : uffizi.it


욕망의 정원, 보티첼리 '봄'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 보티첼리의 봄 (Primavera, 1482)이다. 결혼식 선물로 그려진 작품이다.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를 상징하는 신화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속에 인간의 운명과 욕망도 얽혀 있다.


성모 마리아를 닮은 비너스


가운데 정숙하게 서있는 분이 비너스다. 사랑과 미의 여신이지만 사실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불행한 결혼을 하였고, 사랑을 갈망했고, 불륜에 빠져 아들 큐피드를 낳았다. 남편은 그녀에게 상처를 줬고, 그녀는 질투와 소유욕 때문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비너스는 사랑의 모든 얼굴을 다 가지고 있다. 기쁨과 욕망, 집착과 열정, 질투와 분노, 고통과 불안.


폭풍 같은 사랑을 다 겪은 그녀다. 그래서 말을 삼킨다. 또 심판하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하다. 욕망의 세계와 거리를 두고, 성스러운 중심을 지키고 서 있다. 그녀의 머리 뒤로 나무 그림자가 둘러싸고 있다.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이다. 나 역시 욕망의 소용돌이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 문을 넘고 싶은 간절함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의 세 여신


왼쪽에는 우아한 삼미신이 있다. '셋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냐'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시기와 질투, 경쟁과 우월감, 암투로 얼룩진 그녀들의 기싸움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은 명예욕은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트로이 왕자는 독화살에 죽고, 필사적으로 전쟁을 막으려던 트로이 신관 라오콘도 두 아들과 함께 죽고 말았다. 그들의 욕망이 도시 하나를 무너뜨렸다.


나에게도 가장 큰 열망은 최고가 되고, 돋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솔직했더라면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넘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좋아요 숫자에 기분이 왔다 갔다 하고, 브런치 메인에 글이 올라가지 않아서 우울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순수하게 축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괴로웠다. 노력하는 시간보다 일인자가 되지 못해서 비교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시간이 더 많았다. 욕망은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방향을 잃으면 헤매게 된다.


예기치 못한 변수, 큐피드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는 눈을 가린 채 화살을 겨누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큐피드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랑은 원하는 대로 오지 않고,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간이 조금이라도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면 그건 큐피드 덕분이 아닐까.


욕망의 두 얼굴, 제피로스


제피로스 (검푸른 남자, 봄바람을 불러오는 서풍)는 요정 클로리스를 납치한다. 그녀의 입에서 꽃이 뿜어져 나오고, 클로리스는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한다. 플로라는 화관을 쓰고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 덕분에 정원은 갖가지 꽃으로 가득하다.


제피로스의 사랑은 폭력으로 출발했지만 봄을 불러오고 꽃과 풍요를 낳았다. 이 부부의 아들이 과일의 신 카르포스다. 욕망은 파괴이기도 하고 창조이기도 하다. 제피로스의 욕망은 세상을 이롭게 하였다.


헤르메스의 문


왼쪽 끝에 서있는 청년은 헤르메스다. 영어로는 머큐리. 그는 나무 지팡이를 들어 나뭇가지를 헤치며 탐색하고 있다. 외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 아름다운 정원은 지켜질 수도 있고, 혼돈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문을 열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매일 문 앞에 서 있다. 이 문을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한다. 익숙한 습관이 발목을 잡으면 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내일은 넘어가자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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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 봄과 나의 욕망을 돌아본다


산에서 나물 뜯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신기했다. 눈 밝은 사람에게는 먹을 것 지천인 산과 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내 마음도 그랬다. 마음이 그득그득하면 욕망에 끌려가면서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나를 속일 때도 많았다. 숨기기도 했다. 없는 척 외면하면 잠깐은 잊고 살 수도 있었다.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마음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처음 1 과정 할 때는 비교적 쉽게 버려졌다. 땟국물 씻어내는 정도였다. 2 과정부터는 조금 더 깊은 마음을 버리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면서 수많은 마음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의 위선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욕망을 금기시하고 숨겼다. 욕망은 나쁜 것이고 극복의 대상이었다. 욕망을 싹 버리고 싶었다. 더 깨끗한 내가 되고 싶은 또 다른 욕망이었다. 내 마음을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교만이었다. 나의 열등감을 대신할 우월감이었다.


도랑물로, 실개천으로, 때로 꺾어지는 모퉁이에서 쏟아지는 급류로. 각각의 얼굴이 다르듯이 우리의 삶도 다르다. 그런 우리가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제각각의 삶이 하나의 바다로 향하고 바다에서 만나듯이, 너와 내가 다름을 알고 함께 사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타인이 내 마음처럼 살아주기를 바랬으며, 그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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