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가져다주는 불화
세상에 치약 짜는 법이 달라서 싸우는 신혼부부가 얼마나 많을까.
치약을 뒤에서 앞으로 밀어놓으면 앞에서 짜대서 또 다음 사람이 뒤에서 앞으로 밀어놓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자신은 치약을 뒤에서 앞으로 밀어놓을 생각은 않고 휙 도망가버리는 그 약삭빠름이 아마 서서히 분노 게이지를 차게 만드는 것일 게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치약 짜개를 사다 놓아 치열한 부부간 싸움을 미연에 방치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에어컨이었다.
참고로 나는 바깥 기온이 슬슬 30도를 넘기기 시작하면 조금씩 더위를 느낀다. (남편은 28도쯤부터 더위를 느끼는 것 같다. 꽤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쯤 돼서야 선풍기를 틀어본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서야 에어컨을 튼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점이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아끼고 아끼다 한 발 늦게 튼 셈이라는 거다. 아끼는 게 아니라 안 켜는 것이라고 해보아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던 순간 이미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짠순이로 내몰리고 만다. 그 순간 집안의 불쾌지수가 단숨에 100까지 올라간다.
그래, 집안에 에어컨이 안 켜져 있으면 많이 더울 수도 있다! (여름에는 습도도 높다.) 하지만 나는 선풍기로 만족하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이런 건 미리 알 수도 없었다. 남편은 연애하면서 한 번도 에어컨 얘길 꺼낸 적이 없었다. 내가 어찌 미리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밖이 더우면 에어컨 틀어져 있는 카페를 가면 됐으니까. 그땐 나도 더웠다.) 게다가 우리는 주말부부를 오래 해서 주중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모른다. 아니, 서로가 느끼는 온도차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투덜대며 남편이 창문을 하나씩 닫고 있자면, 나는 투덜대지 마라며 맞서기 마련이다. 에어컨을 못 켜게 하니 에어컨 좀 틀고 살자는 항변이 돌아온다. 고구마가 백만 개는 먹은 마냥 가슴이 답답해진다. 좋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좋은 말로 하더라도 온갖 짜증이 묻어있다. (못 틀게 한 것도 아니잖은가! 에어컨을 틀고 말고 가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다.) 나는 안 더운데 에어컨을 왜 튼단 말인가! 켜는 걸 가지고 뭐라 했느냐며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무논리 싸움이 이어진다.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있으면 고양이도 강아지도 조용해진다. 냉랭한 집안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 순간, 에어컨 찬바람이 집안 공기를 휘감는다. 어느 순간 둘의 머리도 시원하게 식는다.
아니, 우리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붉어진 얼굴로 너덜너덜해진 두 명이 앉아있을 뿐이다.
싸울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싸움의 이유는 사라진다.
그러면 진짜 문제가 보인다. 못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내가 게 문제다. 오늘은 내가 먼저 사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