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란도나츠 Aug 09. 2024

차라리 대신 사주고 말지

물건 하나 사려면 3주가 걸리는 사람들을 위한 변


살면서 나만큼 물건살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극한의 물욕이 오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옷 한 벌을 살 때에도 소재와 가격 따위를 꼼꼼히 따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 번이나 입어보고도 안 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고민 가득한 소비라고 생각하며 산다.


하지만, 주위 반응은 좀 다르다.

특히 나를 낳은 탓에 이런 모습을 3n 년이나 봐와야 했던 어머니가 가장 큰 피해자다. 어머니는 아주 화끈한 구매 성격을 가지고 계신다. 필요하다면 웃돈을 주고라도 빠르게 구매하는 편이다. (참고로 이런 성격이 돈을 잘 버는 사장님 성격이라고 한다. 물건을 더 빨리 사서 쓴 시간의 소중함 > 절약한 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미적대는 나를 답답하게 여기며 "차라리 내가 사줄게!"라며 카드를 꺼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아웃렛에서 통 3중 스텐 냄비를 사주고 말았다. 나는 매장을 나와 이게 가장 싼 가격임을 확신하고는 알겠다고 했다. 오늘은 무쇠 냄비 링크 두 개를 보내고 -나는 3주째 고민하고 있다- 물어봤더니, 결제 직전이셨다. 다행히 쿠팡에서 8천 원짜리 웰컴 쿠폰이 모레까지로 발급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샀다.)


두 번째는 남편이다.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지 않고 돌아선다. '안 사는구나'라며 방심한 상태에서 며칠 동안 "계속 이거 어때? 정말 사?"가 반복된다. 물음표 폭격에 며칠을 시달리면, 그는 "나는 사라고 했어"라며 진절머리를 친다. 이때 한 번 더 물으면 본인이 (나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도망간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정신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망할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이 글은 사실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처럼 물건 하나 사려면 적어도 3주는 걸리는 위한 사람들을 위한 변이다.


이런 사람들은 물건을 보는 눈이 제대로 없다. (최근 내가 뜸 들이는 데에 맛 들린 주방도구로 치자면 저게 몇 인치짜리인지 늘 헷갈린다. )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일단 있는 걸 쓰고 보는 스타일이다. 어떤 게 좋은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주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 공부할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이삼 주 정도는 고민을 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말자. 그들도 취향이 생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도 예산도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막상 사려고 보면 생각보다 물건이 비싸다. 좀 더 돈을 쓰면 어느 브랜드인데 하다가(무쇠 냄비는 ☆우브이냐 PN이냐를 한참 고민했다. 둘의 가격차는 10배가 넘는데도 둘 중 고민한다.) 자유시장 안에서 정신을 잃는 것이다. 겨우겨우 정신을 챙겨 물건을 몇 가지 종류로 한정했더라도 방심할 수 없다. 가격대에서 다시금 고민이 된다. 몇천 원, 몇 백 원 차이도 말이다! 예산을 정하고 나도 좀 더 쓰면 어느 브랜드인데 하면서 고민이 이어진다. (옆에서는 '평생 쓰는 데 이 정도면 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제 딱 사려고 보면, 자유경제체제의 폐해를 느낄 수 있다. 똑같은 물건에도 너무 다른 가격이 많다. 같은 사업자라도 판매 플랫폼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아참, 살지 말지의 결정은 아직 못했다. 물욕 배터리가 아직 100%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고민을 해야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산다는 거다.


 혹시 주변에 물건을 집었다가 내려놨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거쳐 물건을 하나 사는 것이다. 하다 못해 천 원짜리도 그렇다. 수십만 원짜리를 5천 원에 내놓거나(안 사면 0원이다.) 나눔을 하더라도(받으러 가는 시간도 기회비용이다.) 잡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다.


부디 이런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고, 보듬어주는 대인배가 되어달라. 때가 되면 그들은 지갑을 열 것이다.

이전 07화 여기저기 돈 떼이는 호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