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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09. 2023

'황소처럼 묵묵히'와 호연지기

1.'황소처럼 묵묵히'와 호연지기

 내게 근간이 되는 말 두 개가 있다. ‘황소처럼 묵묵히’와 ‘호연지기’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수학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황소처럼 묵묵히’였다. 속도감을 강요하지 않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중요히 여기는 그 말은 무엇이든 더디 배우고 이해하는 내게 그 당시 큰 울림을 주었다. 늦더라도 묵묵한 것 하나는타고 난 나에게 큰 위로이자 용기의 말이었다.


 호연지기는 내가 퇴사와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 만난 말이다. 땅만 보고 걷던 당시, 국어 보습학원의 전단지가 거리를 나뒹굴다 발끝에 걸렸다. 거기에 호연지기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 말을 설명하는 귀여운 맹자의 일러스트보다 궁서체로 쓰여진 

‘온 세상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 세상 무엇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는 큰마음’이라는 글귀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곧 이 말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재해석했다.


 직장생활 5년차 퇴직을 결심했다. 스물여덟 해였다. 휴학하고 공시를 준비하는 여동생, 이제 막 고등학생이 11살 터울 남동생, 어쩌다 집 근처에 생긴 카지노에서 탕진 재미에 빠진 아빠, 어떻게 든 자식들은 공부시켜야 한다고 평생 일을 쉬어 본 적 없는 엄마. 그리고 나. 지방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종합병원에 취직해 ‘황소처럼 묵묵히’를 제일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던 K 황소, K 장녀.


  내가 일하는 수술실은 일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 시스템이었다. 인력 하나를 받기 위해 위에서 어떤 복잡한 절차상의 과정들을 거쳐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위에서 서류로 지루한 싸움하는 동안 아래층에 남아있는 최소한의 인력들은 점심밥을 코로 먹고 두 다리가 퉁퉁 붓도록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이 전 세대의 노동자가 되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여름날이었고 4시 반 퇴근인데 8시에 퇴근한 날. 보통은 밖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우거나 군것질하고 서둘러 내일을 준비하는데 그날은 그냥 따듯한 밥을 지어 먹고 싶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 엄마가 사준 빨간 전기밥통에 하얀 쌀을 씻어 앉히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밥이 익기를 기다렸다. 


 가만 보니 ‘황소처럼 묵묵히’는 참 나쁜 말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나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나 뭐 그도 아님, ‘똥차 가면 벤츠 온다.’와 달리 명확한 결론이 없었다.‘황소처럼 묵묵히’ 그 묵직하고 명징한 진실들은 다 흩어지고 ‘황소처럼 묵묵히 너는 평생 일이나 할 것이다. 황소처럼 묵묵히 일하면 미래에도 황소처럼 일한다? 이거 완전 착한 척 가스라이팅이네.’ 

 

 밥은 가열차게 김을 내뿜으며 익어가는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황소와의 싸움에 제풀에 지쳐 버렸다. 결국 그날 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고, 여름밤은 덥지 않았다. 나는 나를 위해 따듯한 밥 한 숟갈도 제대로 먹어주지 못했다. 내 안의 황소는 쉬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황소처럼 눈만 꿈벅꿈벅하는 밤이었다. 쉬고 싶은 욕망이 풍선처럼 커지다, 고향의 가족 얼굴들이 나타나면 빵 터지기를 반복했다. 


   다음날도 인력은 채워지지 않았고 무자비한 수술 일정이 굿모닝하는 좋지 못한 아침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생이 치열할수록 가슴은 점점 더 빠르게 식어갔다.

  묵묵히 황소는 갈던 밭을 벗어나 들판을 자유롭게 누비는 상상을 하곤 했다. 

‘번데기가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듯, 가죽을 훌러덩 벗어 던지면 탄탄하며 날렵하고 위협적인 야생마가 진짜의 내 모습일지도 몰라.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거야.’ 나는 사직을 결심했다.

   

 수입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세 군데 넣어 보았다. 한곳에서 면접을 보러오라 했다. 다행히 오후 당직 날이라 오전에 서둘러 면접을 보러 갔다. 20평 남짓한 조그마한 사무실 속에서 5평 남짓한 이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젊은 대표이사와 50대로 보이는 영업이사 이렇게 두 명의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들의 첫 번째 질문은 ‘왜 좋고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이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오고 싶은지’였다. 그때의 대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일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분들이 건넨 두 번째 이야기는 영어로 자기소개해 보라는 것이었다.

  “Let me introduce… …Um um my name is Ji-yeon… … Bla Bla Bla” 두번째 대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무 노래나 한 곡 해보라 했다. 잠깐을 주저하다 대뜸 김수희 씨의 ‘남행열차’를 불렀다.  호기롭게 황소의 가죽을 집어 던지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넓은 들판이 아니라 깊고 깊은 모욕의 바다였다. 어떻게든 신나게 부르려 애를 쓸수록 더욱더 깊이깊이 모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면접관 두 분이 티 나게 비웃고 있었던 것은 ‘남행열차를 부르는 나’가 아니라 ‘종합병원 5년 차 경력을 대단한 스펙인 줄 알고 아무 준비 없이 온 나’ 였으리라.

   

 뭐든 당차게 치고 나가는 야생마를 꿈꾸었으나, 병원 밖 세상 속의 나는 황소는커녕 허물 속 애벌레였다. 밟았는데 꿈틀도 못 하고 나와, 안전한 황소의 가죽을 고쳐 입고 다시 출근했다.

   

 한 번쯤 찾아오는 번아웃 이라지만, 한 번에 다 타서 두 번을 살 수 없을 것 같아 결심한 사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첫걸음을 뗀 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모든 수가 무리수이거나 악수’라는 거였다. 


 영어를 못하는 지방대생 타이틀을 걸고 거창한 도전을 이어갈 용기가 없었다. 치고 나갈 자격도 자신도 없이 땅만 쳐다보며 걷고 있는 내게 하늘에서 별안간의 지혜의 말이 떨어졌다. 그게 바로 위에서 말한 전단지 속에 ‘호연지기’였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

 

 더 이상의 도전을 주저하는 나를 나 스스로 쫄보라 비웃거나 놀리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 그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마음. 내가 솔직하고 떳떳하게 살아간다면 어디서 무얼하든 뭐가됐든 세상 무엇도 나를 괴롭힐 수 없다는 마음. 

나는 모든 걸 걸어 볼 용기로 지금의 이 직장에서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황소처럼 묵묵히 일하는 삶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 직장 한 부서에서 일한 지 어느새 19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출근하는데 용기와 비장함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황소처럼 묵묵히… …내 할 일을 해낸다.’ 정도의 다짐과 주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일희일비 않고 ‘그러려니’ 여길 수 있는 마음 정도면 족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엄청나게 대단해질 복선도 반전도 없는 삶이지만 이제는 버티면서 자란 내 인생 자체를 사랑한다. 새로운 상장도 없고, 급등도 없지만, 천천히 우상향하는 믿음직한 우량주 같은 삶이라 자평하고 싶다.

  ‘뜨겁게 열망했고, 싱겁게 끝나버린 사직.’ 고뇌의 날들을 아우르는 ‘황소처럼 묵묵히’와 ‘호연지기’를 준 삶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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