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당신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열아홉에 나를 낳은 이래로 엄마가 우리 삼 남매에게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었다.
바로 '꿈을 크게 가져라.' 였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았다. 마음대로 욕심부릴 수 있는 게 꿈이라니! 너무 근사했다. 꿈꾸는 일 앞에서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조물주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내 안에 가진 열정과 진실을 좇는 일은 행복했다.
열아홉 고3 수능 후 성적과 대한민국의 취업난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꿈꿔온 삶과 반비례를 이루고 있었다. 함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반비례라는 것이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의 꿈은 '학교라고는 외할아버지 살아계셨을 때 초등학교 몇 번 가 본 것이 전부인 엄마, 하루하루 절박한 생을 살아온 엄마. 그런데도 늘 옳은 것을 선택하고 강단 있게 이겨낸 엄마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기엔 턱없이 초라한 성적표였다.
엄마에게 '재수하겠다.' 했을 때 그렇게 꿈을 강조하던 엄마는 단칼에 반대했다. 결국 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 대학교 '취업이 가장 잘 된다'라는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간호사의 일은 문학보다는 수학에 가까웠다. 분명하고 정확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비난받거나 모욕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위험에 처했다.
천성이 느긋하고 낙천적인 나는 느리고 정확하지 못한 일 처리로 비난받거나 모욕당하거나 위험에 처하기 일쑤였다. 취업은 잘 되었지만, 적성을 고려하지 못한 직업이었다.
세월이 얼마간 지난 뒤 알게 됐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해도 일은 원래 힘들다는 것임을 말이다. 그땐 그걸 몰라 많이 방황했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선택한 나를 자책했고, 모욕을 준 사람들을 미워했고, 하늘에 대고 '이 더러운 세상' 욕도 많이 했다. 아름다운 문학은 멀어져가고 세상에 혼자 덜렁 내던져진 늑대인간 같았다. 직장에서는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퇴근 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이용해 그날의 비난과 모욕, 위험들을 기록했다.
무언가 되기를 열망하는 꿈은 접고 그저 하루하루 견디게 해달라고 버티게 해달라고 비는 심정으로 두드렸다.
처음엔 한 글자 한 글자 두들기는데 너무 아팠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심하게 훼손된 나'를 만나는 건 '그걸 모른척하며 사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뭣도 모르는 시골뜨기'를 바라봐 주고 안아주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오답 노트로 시작한 일기 끝머리에는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게 쌓여 갔다. 그렇게 20대, 30대가 지나고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더 이상 적성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근면 성실함으로 극복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일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 때가 오히려 단순했다. 이제는 불안한 현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생활에 '인'이 박힌 인간이 글자에 '인'을 새긴다. 그러면 내 안에 뜻밖의 평화가 찾아온다.
엄마는 평생 옳은 말씀만 하신 분이다. 대학 입학 원서를 내며 썩 내켜 하지 않는 나를 두고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글은 언제라도 쓸 수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간호사가 돼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종일 책을 들여다보고 고매한 정신세계를 가진 작가가 되고 싶던 꿈에 '간호사'는 분명 역풍, 태풍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바람을 맞고,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이 글을 쓰게 했다. 나는 여전히 글에 진심이고, 어떤 글이든 쓰는 삶은 행복하다. 이런 내 생을 두고 '꿈'과 싸우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생업을 져버리지 않고 이마만큼 건져 오늘도 한 줄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가?'
'꿈꾸던 모습은 아니지만 꿈 안에 있다!'
분명 꿈을 접은 적도, 꿈을 잃어버린 때도 있었다.그런데 아침에 해 뜨고 저녁에 해 지는 모든 순간, 꿈이 나와 함께 눈뜨고 잠들었던 것 같다. 흔들리고 불안한 삶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이름답고 유연한 나의 또 하나의 자아처럼 말이다.
어쩌다 30년 차, 어쩌다 정년 이렇게 세월이 지나면 또 어떤 것을 원하고 깨닫고 쓰게 될까?! 순풍, 역풍, 태풍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언젠가는 옳은 말만 하는 우리 엄마의 한평생을 책으로 펴내는 날을 다시 또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