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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16. 2023

2023년 3월 어느 영끌족의 정신 승리

1. 2023년 3월 어느 영끌족의 정신 승리


'이 불안함에 오늘 하루, 아니 일주일쯤은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디 더 이상은 이 불안함이 나의 생각과 영혼 그리고 시간을 좀 먹는 일이 없도록, 훌훌 털고 자유로와질 지혜를 주세요.'     

 

 억울할 것도 없다.화가 나는 일도 아니다. 누군가 나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모욕을 준 일도 아니다. 차라리 피가 거꾸로 쏟아 삽시간에 분노에 휩싸여 아무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다면 내 안에 출렁이는 불안함이 덜어질까?!     

 불안함이 분노보다 더 무서워 덜컥 산다는게 겁이났다.     


  # 2020년, 전세끼고 서울에 집을 하나 샀다. 너도 나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하나를 장만하던 때, 나도 뭐에 쫓기듯이 홀려 하나 장만했었다. 전세를 준 집이라 사놓고도 한번을 살아보지 않아 남의 집처럼 느껴졌는데 2023년 현재 그 것이 내 집이였음을 매일매일 절감하고 있다.     

 2022년 9월 현재 세입자에게 전세금의 5%를 올려 전세계약갱신을 했다. 12월 3일 현 세입자에게 갑자기 이사를 가야함을 통보를 받았다.     

 2023년이 되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 값은 뚝뚝뚝 떨어져, 내가 구입했을 당시보다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대출이자는 두배가 뛰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

요즘 부동산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누군가 허락도 없이 내 일기를 가져다 베껴 놓은 것 같다. 영끌, 패닉바잉을 한 203040의 최후......

 세입자의 애타는 카톡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아무리 우산 없이 비를 맞는게 인생이라지만 , 지금 내가 맞고 있는 이 비는 옷이 젖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가 뚫릴 지경이다.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머리위로 내리는 비 하나 피하지 못하는 삶이라니... ...      


  # 아이의 새학년이 시작되고 필수 교과목을 추가해 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 딸의 등하교 노란색 학교, 학원버스를 내 출퇴근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짜야 한다. 

 사교육이 온전히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워킹맘에게 사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다.      

 유치원때부터 노란색 버스에서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 딸. 어쩜 우리 딸은 배움의 순수한 즐거움보다, 통근버스 속 직장인의 피곤함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딸을 위해 좀 더 편안하고 좋게 느낄만한 학원을 보내주고 싶은데, 언제라도 나타나 간식 챙겨주며 이 학원 저 학원 라이딩 해 줄 수 없는 엄마라 선택지가 많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집 애는 어디어딜 간다더라, 무엇을 시작했다더라, 이사를 간다더라.'

모두에게 아이교육의 목적지가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목적 없이 매일매일 오고 가는 길 위에 아이를 내놓은 것 같아 미안하다.     

 

몆 개의 괜찮은 학원을 추려냈다. 그다음 스쿨버스와 학원버스 연계가 되는곳을 추려봤다. 남는게 없다. 다시 원점에서 픽업이 가능한 학원을 우선시 해보니 영 내키지 않는다. 결국 미완성의 스케줄로 새학년을 시작했다. 아이도 정신없고 나도 너무 바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겠다.      

 어쩜 올 한해 더 아이는 목적 없는 그 길 위에서 직장인의 피곤함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다.

 # 3월~4월 단독저서를 위해 두달동안 10개 이상의 글을 써야한다. 당장 오늘까지 한 꼭지의 글을 써야하는데 ... ... 노트북 키보드위, 어수선한 주인의 마음을 따라 손가락들이 방황을 한다. 문학이 사치인가? 생을 따라 쓰여지는 글 들에 멋이라곤 일 도 없다.     

 요즘은 직장에 있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다. 아무리 바빠도 똑같은 시간에 손에 익은 일들, 그리고 그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불안한 마음들이 가라앉는다.     

 정해진시간, 많든 적든 정해진 그날그날의 일들.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안정된건 여덟시간 직장의 삶이다. 어느날은 직장이 나를 옥죄는 올가미 같고, 나를 갉아먹는 악마 같은데 요즘같을 때는 유일한 나의 우산 같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고 살림하며 늘 가졌던 질문이 있다.

 '이게 맞나? 이게 맞어?'

 '이게 맞다.'

 이 답이 언제까지 유지 될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현재는 직장이 나의 족쇄가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로부터 더이상 망가지지 않고 숨을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다.     

 이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후배들이 요즘 이런 말을 한다.

 “우와 ~열정적이시다 .”

 어느 영화의 제목이 불현듯 떠오른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직장에서 여덟시간 삼십분 후, 기다렸다는 듯 현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나의 고민들이 우리 남편, 아이에게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세어나가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귀가하는 남편과 아이를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나는 너무 위험한데, 소중한 저들을 세상으로부터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켜내는게 내 삶의 의미이자 소신이다.     

 저녁식사 후 남편은 쇼파에 길게 누워 티비를 보고,딸은 정리 안 된 학원 스케줄을 토대로 나름의 생활계획표를 짜고 있다.쇼파에 옹기종기 붙어앉아 히히덕 거리는 너무 예쁜 저 둘이 진짜 '나'를 안다면,그때 나는 정말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세상에 뒤쳐지는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등떠밀려 선택했다 한 일들도 앞서나고자 부린 욕심들이 들킬까봐 부끄러워 부린 괜한 엄살들이었다.

 '그냥 편안하게 세상에 자리를 비켜주고 목적없이 왔다갔다하는 아이의 학원버스처럼 매일을 살까? 집을 팔고 작은 전세를 얻고 때되면 또다른 전세를 구하고...

아이는 긴 시간 '자녀돌봄'을 하며 그렇게 살까?'     

 싫다. 정말 싫다. 이미 내 마음에 답은 정해져 있고 길을 찾아야하는데 길은 어디에 있는걸까?!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세입자를 곤란하게 하고싶지 않다.

시간에 맞춰 다닐 수 있는 학원 스케쥴을 바꿀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이자가 저렴한 대출을 알아보고, 동네 학원 블록그를 보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느라 밧데리가 늘 간당간당한 휴대폰이 지지직 울린다.     

 주택금융공사에서 아낌e보금자리론 승인이 떨어졌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대출에 또 대출을 받는데 기쁜 참 이상한 세상이다. 그래도 세입자에게 당장 돌려줄 돈이 생겨 참 다행이다.

한숨을 돌렸다.머리를 굴리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알아본 결과, 나는 마음을 가장 잘 쓴 현명한 집주인이다. 당장 다음달 이자폭탄이 내게 던져지더라도 나는 잘 될것이다.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가 본인의 의지로 쓴 생활계획표를 내게 내민다.

정리안 된 학원을 감안하고 월화수목금 각각 계획들을 야무지게도 세웠다. 바꿔야 하는건 학원스케쥴이 아니라,나 자신이었다. 목적지를 제시하지 못해 가졌던 미안함을 버리고 , 그 안에서 스스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아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82년생의 나는 이렇게 자랐는데, 15년생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랄지 너무너무 기대된다.     

 사랑하는 우리식구 이렇게나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선방을 맞고, 머리위로 줄줄 비가 세지만 여기까지. 적당히 당해주고 곱절로 행복해질 시간이 왔다.      

 불안함을 혼쭐내러 건강한 정신들이 출동한다~!!!

 '세상아 나를 따르라!!!'     

 

불안해서 미치는 것도 참 가지가지다.


-MY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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