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페루, 쿠스코여야만 했다.
다리 없는 닭, 바닥 뚫린 티코, 수많은 흥정 실패.
돌이켜보면 사소한 해프닝들이었다.
변수 많고 탈 많다는 남미에서, 이 정도면 순탄한 편이라 생각했다.
남아공 생활로 다져진 나의 내공 덕분이라고, 나는 자만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그 말씀은, 바로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
<완벽한 계획, 그리고 산산조각>
열흘째 아침, 우리의 계획은 완벽했다.
저녁 7시 비행기로 쿠스코에 가기 전까지, 느긋하게 하루를 즐기는 것.
혹시 모를 버스 연착에 대비해 비행기는 다음 날 저녁 비행기로 잡았고, 좌석이 없어질까 24시간 전 웹체크인도 마쳤다.
공항 픽업 차량 예약까지.
남은 것은 한인 민박의 맛있는 아침을 먹고, 라르코마르 쇼핑몰에 가서 기차표를 바꾸고, 딸아이와 소꿉놀이를 하고, 만화책을 보며 오후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철저한 나라니!
순조롭게 계획을 따라 착착 진행되었다.
오후 4시 반, 우리는 모든 계획을 완수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항상 그렇듯,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기다림의 끝은 캔슬>
"쿠스코 공항의 기상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뜰 수 없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우리에게 날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조금만 기다리면 탑승이 시작될 거라며 행복회로를 돌리며 기다려봤지만, 밤 9시가 넘어 결국 비행기 취소 공지가 떴다.
내일 일정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아침 9시 볼리비아 비자 발급, 오후 1시 오얀따이땀보행 셔틀, 다음 날 새벽 마추픽추 기차표와 입장권까지.
하나라도 틀어지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빡빡한 스케줄.
눈앞에서 와르르 성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항의하는 사람들, 소리 지르는 사람들.
나도 따지고 싶었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벙어리 신세였다.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혼돈 속의 구원자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엄마의 휠체어를 밀어주던 공항 직원이 우리를 체크인 카운터로 안내했다.
덕분에 우리는 긴 줄을 서지 않고 가장 먼저 내일 아침 7시 반 비행기 표로 교환할 수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엄마의 불편한 무릎이 우리 가족의 구원줄이 된 것이다.
표를 구하고 나니 숙소가 문제였다.
밤 10시.
치안 안 좋은 리마 공항 근처.
부모님과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가야 하나. 부킹닷컴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뜯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그냥 공항 호텔 가자."
그 순간, 아빠의 카드는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라, 모든 혼돈을 잠재우는 마법 지팡이처럼 보였다.
넋이 나간 채 호텔로 향하는 길, 엄마는 "던킨이나 사 가자"고 하셨다.
"이 마당에 무슨 던킨!" 짜증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남편이 말없이 달려가 도넛을 사 왔다.
나중에야 알았다.
소화력이 약한 엄마가 유일하게 속 편하게 드실 수 있는 게 던킨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맛없는 공항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운 엄마의 허기를, 딸인 나도 아닌 사위가 챙긴 것이다.
못된 딸내미는 성질이나 부렸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공항 호텔은 하룻밤에 40만 원이었다.
그간 묵었던 숙소 열흘 치 값이었다.
하지만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가장 작은 문제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나의 계획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 조각난 틈새로 가족들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휠체어, 아빠의 카드, 남편의 도넛.
혼돈 속에서 나를 구한 것은 나의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였다.
옷도 없이 땀에 절어 호화로운 호텔 침대에 누웠다.
참으로 여유롭게 시작해서 전쟁같이 끝난 하루.
그래, 이런 에피소드 하나 없으면 그게 어디 남미 여행이겠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그런데, 끝이 좋은 거 맞겠지?
우리 내일 아침 7시 비행기 타고 쿠스코 갈 수 있는 거 맞겠지?
아까 수하물 부친 거 찾을 필요 없댔는데, 우리 가족을 잘 따라오는 거 맞겠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