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관절, 마침내 마추픽추를 오르다.

Day 12. 페루, 마추픽추

by 다락방의 미친여자

새벽 4시, 우리는 마추픽추로 향했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 모두가 입이 닳도록 칭송하는 바로 그곳. 블로그 후기에는 다들 너무 좋아서 두 번, 세 번씩 보고 온다던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완벽했던 계획은 기차를 제시간에 탄 것을 빼고는 모조리 어그러졌다. 마추픽추는,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었다.




<걸음걸음 돈을 밟고 가는 길>

기차표도, 버스표도, 입장권도,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인당 110$의 기차표로도 모자라 버스표까지도 비쌌다. 굽이굽이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은 마치 돈으로 포장된 것 같았고 나는 바닥에 깔린 돈을 걸음걸음 밟고 가는 함진아비가 된 것만 같았다.

버스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올랐다. 저 고비를 돌면 보일까, 다음 코너를 돌면 나타날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입구 도착. 왜 때문인지 우리 가족의 입장권에는 국적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찍혀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쓰더라. 북한으로 찍히는 경우도 많다니, 아무렴 어떤가.




<10분짜리 동네 뒷산이라는 거짓말>

우리가 사진에서 흔히 보는 마추픽추의 전경, 와이나픽추를 배경으로 한 그 장관을 보려면 '망지기의 집'까지 올라야 한다. 출발 전, 나는 여러 사람에게 그 길의 난이도를 물었다. 여행자 커뮤니티에서도, 현지에서 만난 청년들도 모두 똑같이 말했다. "괜찮아요. 한 10분? 15분이면 올라가요."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였다.


적어도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은 칠순의 엄마와,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네 살 딸에게는 절대 '괜찮은' 길이 아니었다. 길은 비좁았고, 계단은 한 단의 높이가 30cm를 훌쩍 넘었다. 중간에 쉴 곳도 마땅치 않았다.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에 떠밀려 하염없이 올라야 했다. 일방통행이라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괜찮다"라고 말했던 건장한 청년들에게는 동네 뒷동산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그 길은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엄마가 평소 쓰시던 의료용 지팡이라도 챙겨 왔을 텐데. 아쉬운 대로 숙소에 비치되어 있던 등산스틱을 들고 온 게 천만다행이다.




<하늘아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딸을 업다>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엄마가 망지기의 집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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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감탄사 외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2016년, 부모님이 남아공에 오셨을 때 엄마는 모든 일정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 엄마가 당신의 두 다리로 이곳 마추픽추에 오르신 것이다. 아빠는 "당신과 함께 여기에 오니 정말 좋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셨다. 누군가에겐 10분짜리 산책길이었지만, 우리에겐 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마추픽추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망지기의 집에서 풍경을 더 즐기다 내려가기로 하셨다. 남편과 나, 딸아이는 마추픽추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고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화창했던 날씨는 금세 우리를 괴롭히는 뙤약볕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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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어줘!"
네 살 딸에게 마추픽추는 그저 의미 없는 돌덩이일 뿐이었다. 자신의 무릎보다 높은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에 부치자 녀석은 칭얼거리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는 수없이 이 16kg짜리 껌딱지를 남편과 번갈아 업고 안으며 우리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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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마추픽추의 해시계를 보는데도, 자길 안아달라며 잡아당기는 저 손길이 웃프다. 마추픽추 유적이 산비탈에 있다 보니 꼬마쥐 혼자 힘으로 오르기에 계단 한 칸 한 칸은 너무 높았고, 홀로 내려가기에는 붙잡을 난간도 없는 높은 계단이 너무 무서웠을게다. "조금만 더 가면 야마가 나온대!"라고 달래 가며 마추픽추를 돌아보았지만, 이제 거짓말도 더는 통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집 아이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부모들은 아이를 둘러업거나 꾸짖으며 어떻게든 전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울상이다. 아이고. 미안해. 어른들이 욕심부렸어.

20181227_092435.jpg 지칠 대로 지친 작고 처량한 꼬마쥐의 등을 보라..

결국 우리는 포기했다. 주거지역은 구경도 못한 채, 유적 관리자에게 사정해 샛길로 빠져나왔다. 고작 세 시간 반의 탐방. 블로그에서 본 '마추픽추 유적 전체를 두 번 돈 후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 꼬마쥐는 만 4살 때 이루어진 남미여행의 대부분은 잊어버렸지만, 마추픽추만큼은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무너무 힘든 곳이었다고.


마추픽추를 나와 굽이굽이 버스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마을로 내려오니 시계는 이제 겨우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오후 3시이건만! 우리는 기찻길 옆 식당에 자리를 잡고 4시간 동안 삐대기 시작했다. 메뉴를 쪼개서 시키고 또 시키면서, 중간중간 낮잠도 자가면서 버텼다. 깨작거리며 점심을 먹는데, 하늘이 쪼개질 듯 비가 쏟아졌다. 조금만 늦게 내려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는 텅 빈 시간을 견뎠다.


돌아오는 기차는 또 어찌나 느리던지. 결국 우리는 2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3시간 반 구경하고, 4시간 식당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4시간 기차를 타고 돌아온 셈이 되었다. 무슨 일정이 이런가.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하지만 오늘의 끝에는 쿠스코의 한식당에 예약해 둔 김치찜이 기다리고 있다. 김치찜… 김치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버틴 하루였다. 그리고 그 김치찜은, 정말이지, 대감동의 맛이었다. 엄마 아빠는 몹시 즐겁게 식사하셨고, 그 모습을 보니 하루의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무사히 끝났다. 6년이 지난 지금, 마추픽추를 떠올리면 유적의 풍경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생각난다. 험준한 길을 함께 오르던 엄마 아빠의 뒷모습, "힘들지 않냐"고 서로를 챙기던 남편과 나의 목소리, 안아달라며 내 옷자락을 잡아끌던 꼬마쥐의 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잊게 했던 김치찜의 맛. 힘들었지만, 정말로, 보석 같은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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