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의 추억은 코파카바나 해변에 묻어두고

Day 35 리우 데 자네이로, 브라질.

아. 정말. 이 날은 어이가 가출하는 사건이 아침부터 발발했다.


시작은 그랬다. 오늘 리우의 랜드마크, 예수상을 보러 서둘러 출발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내가 숙소에 키를 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 숙소는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자물쇠가 걸리는데!!!

더 속상한 건 문을 쾅 닫으며 열쇠를 안 들고 나온 게 생각이 나서 "앗!! 열쇠!!!"하고 외쳤다는 거.

입으로 나불대면 뭐 하나, 힘껏 닫은 문은 이미 손 끝을 떠났는데.

남편 말로는 "열쇠!" 하면서 문을 쌔리 닫아버리더라고..


집주인에게 왓챕을 보내니, 여분의 열쇠를 갖고 오후 2시쯤 온단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열쇠수선공 불러서 남의 집 문을 딸 뻔했다.

오후 2시면, 여기저기 둘러보고 점심 먹고 들어가면 시간이 딱 맞겠다.





<예수님이야, 하나님이야?>

리우의 랜드마크를 넘어서서 브라질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구속자 예수상.

날이 좋을 땐, 리우 시내 어디에서라도 저 멀리 이쑤시개만 한 예수상이 보인다.


날씨가 관건인 곳이라, 오전에 날이 화창하길래 서둘러 예수상으로 먼저 향했다.

셔틀을 한 번 갈아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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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이렇게 예수상이 나옵니다!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꼬마쥐는 "와 하나님이다!!!"라고 외치더라.

뭐, 그게 아주 틀린 것은 아니면서도 미묘하게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말이로구나.

아이에게 삼위일체를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호응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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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꼬마쥐는 저렇게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더니만 나에게 목말을 태워달란다.

야!! 그런 건 아빠한테 이야기해! 느그 아빠 어딨노!!!

남편은 꼭 이런 때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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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상에서는 리우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저 멀리 빵산도 아주 잘 보인다.

어느덧 11시가 되어 점점 뜨겁고 힘들다.

둘러볼 만큼 둘러봤으면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리우 데 자네이로 성 세바스티안 센트랄 메트로폴리탄 성당.... 헉헉>

셔틀 내린 곳에서 센트로 성당까지는 5분 거리.

아직 점심 먹으러 가기엔 시간이 조금 이르니, 우버를 불러 성당을 보고 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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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물, 특히 콘크리트를 부러 노출시켜 만든 건물들이 다 그렇듯 겉에서 보면 참 흉측스럽기 짝이 없으나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사방으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어 외양보다는 내면이 조금 낫다.

(많이 이쁘다고는 못하겠다)


교회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많이 쓰이는 편인데,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참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

밖에서 보면 세상 칙칙한데, 교회 안에서 빛이 통과하며 보이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은 교회 안팎에서 이처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두고 종교에 대한 강력한 상징 중 하나라고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어떠한 관점에서 종교적 진리와 성스러운 이야기를 대하는가에 따라 생기는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이다. 따스한 신앙의 울타리 안쪽에서 볼 것인가, 혹은 차갑고 메마른 바깥에서 볼 것인가. 기독교인의 신앙은 신이 그린 창문이 있는 대성당과도 같다. 외부에서는, 그 영광을 볼 수 없을뿐더러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쪽에 들어오면, 한줄기 한줄기의 빛이 어우러져 드러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보게 된다.

-나다니엘 호손, 대리석 목신


우야동. 부모님은 고전적인 유럽풍의 성당을 더 좋아하시므로 이 성당은 탐탁잖아하셨다. 하하하!!!


가까운 곳에 셀라론 계단도 있지만 엄마가 무릎이 안 좋으신 데다가 이 뙤약볕에 계단을 오르내리고 싶지 않으므로 그냥 패스하기로 합니다!! 2시에 집주인 만나 열쇠도 건네받아야 하니 바쁘다!!!





<브라질식 무한리필 고기 전문점, 츄라스카리아>

점심 먹으러 간 곳은, 우리 숙소 일 층에 있던 츄라스카리아 팰리스. 우연히 숙소 1층에 유명한 츄라스카리아가 있었다. 구글평점도 4.6으로 높았으나 그만큼 상당한 가격을 자랑하는 곳이라, 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브라질에 왔으니 츄라스카리아를 한 번 먹어봐야지 싶어 들어갔다. 인당 4만 원 정도 했고 꼬마쥐는 반값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츄라스카리아는 무한리필집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싶다. 차이점은 서버들이 부위부위를 들고 다니면서 서빙해 준다는 것.

집주인이 2시경에 온댔으니, 그때까지 갈 곳도 없고 여기서 삐대면서 고기나 계속 먹어야지.

끝없이 제공되는 고기는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꼬마쥐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다들 표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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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곳이라 그런지 라이브로 연주도 해준다. 마침 우리 테이블이 그랜드 피아노 옆이었는데, 연주자 할아버지가 꼬마쥐에게 다가오셔서 플루트 신청곡도 받아주시고, 피아노로 데려가 함께 연주도 해주셨다. 꼬마쥐는 행복했지요.


먹다 먹다 배가 불러서 결국 하나씩 나가떨어지고, 집주인과 만나기로 한 2시가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길래 왓챕을 날려보는데 대답이 없다. 결국 약속한 2시가 넘어 3시가 훨씬 지나자, 건물 관리자가 와서 옆집 창문을 통해 건물 외벽을 타고 숙소 부엌창으로 들어와 문을 열어주었다. 나의 작은 실수가 불러온 거대한 이 민폐라니..




<내 안경 내놔라 코파카나바 바닷가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힘드셨던 부모님은 숙소에서 쉬시고, 꼬마쥐와 남편과 나는 집 앞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바다가 우리를 부른다~~ 모래놀이를 할 생각으로, 5리터짜리 빈 물통도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 그리고 열쇠에 이어 두 번째 재앙이 나를 덮쳐왔다.


아니 여기는 웬 파도가 이렇게 센 겁니까.


언제나처럼 물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있는 나는, 앞뒤도 잘 안 재보고 꼬마쥐를 안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거대한 파도를 맞고 꼬마쥐만 챙겨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다.. 근데 근데 안경이 업써. ;ㅁ;

안경이 없으면 잘 안 보인단 말이다.

눈뜬 봉사가 되어버린 아내를 위해, 남편이 숙소에 들어가 여벌 안경을 갖다 주었다.


무서운 코파카바나 해변... 다시는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자며 해변에서 꼬마쥐와 모래놀이를 하는데, 물이 필요하단다.

하여 5리터 물통에 물을 받으러 바다에 갔고, 나는 무릎도 안 오는 깊이에서 물만 뜨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또 갑작스러운 거대 파도가 나를 덮쳤을 뿐이고... 두 번째 안경도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아아아아아아악!!!!!!


진짜 두 번째 안경이 벗어지는 걸 느꼈을 때 나는 안돼!!! 를 외치며 내 주변 바닷물을 막 더듬었지만 소용없써.. 아쉽게도 안경은 약 올리듯 내 손끝을 스쳐 파도 따라 바다 저 멀리로 가버렸다.


나는 샤워할 때도 안경을 쓰는 사람인데!! 이제 더 이상 여벌 안경도 없는 데에에!!!!!


아아아악!

차라리 남편이 안경을 안 갖다 줬더라면!! 내가 안경을 벗어놓고 물을 뜨러 다녀왔더라면!!

아니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만 뜨러 간 건데 그때 하필 그런 큰 파도가 날 덮칠 줄 누가 알았냐고요..

열쇠를 놓고 문을 닫았을 때에도 말할 수 없는 후회가 나를 사로잡았었는데, 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안경을 두 개나 잃어버리니 그 후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물놀이를 접고 집으로 들어와 선글라스를 꼈다....

신에게는 아직 남은 선글라스가 있습니다. 그 선글라스에는 도수가 들어있지요.

집안에서 선글라스 쓰려니 아주 어둑어둑하니 갑갑하고 좋더라. 어두워서 갑갑할 것인가, 아니면 안 보여서 갑갑할 것인가. 선택은 항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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