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Feb 20. 2024

[청소년 문학] 연대의 힘을 말하는 소설.

<꼬리와 파도>, 강석희

청소년 문학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왠지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면 청소년의 전유물 같기도 하고, 성인이 읽기엔 유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들 하실 것 같아요. 청소년 문학의 정의 자체가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당하도록 쓰인 문학(네이버 국어사전)’이라고 하니, 그런 생각이 언뜻 적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10대들을 만나는 일이 업인 데다 담당 교과가 국어이다 보니 청소년 문학과 굉장히 가까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나 문학 교과서에는 청소년 문학이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거든요. 이런 점이 학생들이 문학을 멀리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문학을 깊이 읽는 대표적인 방법은 인물들의 삶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는 것인데, 지금 문학 교과서에는 10대들의 이야기가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제가 국어교사라고 해서 특별히 청소년 문학을 많이 접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애써 찾아 읽어야 하는데 저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문학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어요. 뭐랄까.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느낌도 들고, 가끔은 작품 속 10대들의 모습이 제가 일상에서 만나는 10대들의 모습과 조금은 괴리되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특히 문어체의 대화들이 참 안 와닿더라고요. 오히려 10대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문학 속 10대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아이러니였습니다.      


작년 봄, 아주 오랜만에 청소년 문학을 읽었습니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얕은 호기심으로 구입했어요. 내용을 예측하기 힘든 제목과 표지 그림에 호감이 일기도 했고요. 한참 책을 읽을 시간조차 없던 때라 얇은 두께에 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이 ‘꼬리와 파도(강석희)’입니다.      


꼬리와 파도는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성폭력과 학교 폭력 등 각종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십 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가해자는 밝은 세계에, 피해자는 어두운 세계에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들을 소재로 삼고 있어요.


상처 입히는 자들은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과 힘이 영원할 것처럼 믿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그러했고요. 그들의 폭력이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방임과 무관심이 있습니다. 소문을 만들고 의심 없이 재생산하면서도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무관심의 파도가 피해자들을 숨게 만듭니다. 잘못 없이 숨어들던 피해자들은 가해자 몫인 죄책감까지 떠안은 채 침잠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곁에는 함께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함께 나아가려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있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는 ‘우리’가요. 이들의 연대는 끝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냅니다. 작은 꼬리들이 파도가 되는 기적. 그리하여 숨어있던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밀려 나오는 진짜 기적이 일어납니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건 아니었다(267쪽)’     


아이들의 연대는 파도를 만들었지만, 모든 것은커녕 많은 것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장입니다.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사실 현실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지는 못하지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이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성인이 된 주인공이 보여주는 어른의 모습입니다. 그는 유사한 일을 겪는 십 대들에게 ‘더 말해도 된다’고 독려합니다. 방임이나 무관심이 아닌, 누구보다 강한 연대가 되어줍니다. 더 말해야 한다고 용기를 주고, 네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을 줍니다.      


저는 이 소설을 다섯 번쯤 읽었는데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립니다. 아이들의 연대가 눈물겨워서요. 어른들의 잘못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연대를 이뤄 서로를 지켜내는 과정이 처절하게 아름다워서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십 대들을 지척에서 만나는 저로서는 남다른 고민일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만나는, 혹은 앞으로 만날 아이들, 나아가 그 누구도 이런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지만, 만약 그런 아이가 저를 찾아온다면 정말 ‘더 말해도 된다’고 ‘더 말해야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자문하게 됩니다. 어쩌면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에 불씨를 놓아줍니다. 소설 속 아이들의 깊고 진한 상처를 목도했으니까요. 그 내면을 이토록 섬세하게 들여다보았으니까요. 아마도 저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지요. 이런 게 소설의 힘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만나게 하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게 하며, 나아가 현실의 나를 변화시키는.     


‘꼬리와 파도’의 매력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문장이 참 섬세해요. 아이들이 겪는 미세한 감정들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며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성함이 ‘강석희’인 데다(편견입니다) 주인공들도 여학생이고 문장까지 너무 섬세하다 보니 작가님의 성별이 여성일 거라 지레 짐작했지요. 하지만 반전. 작가님은 남성이시라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이셔서 좀 더 사실적으로 십 대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꼬리와 파도’ 어떠신가요? 여전히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모두 한때 청소년이었지요.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내면에는 청소년기에 입은 크고 작은 상처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그 상처가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이라면 아마 여전히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네요. ‘청소년 시절에 내가 듣고 싶던 말, 하고 싶던 말, 만나고 싶던 사람들이 이 소설에 모두 담겨 있다’라는 최진영 작가님의 추천의 말을 인용합니다. ‘꼬리와 파도’에는 우리가 청소년 시절에 듣고 싶고 하고 싶던 무수한 말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요.      


얼마 전에 강석희 작가님의 신간 ‘내일의 피크닉’이 나왔습니다. ‘내일의 피크닉’은 전문계고등학교 현장실습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신간도 참, 좋았습니다. 평소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10대 아이들의 또 다른 삶을 볼 수 있었거든요. 작가님의 열일이 참 반갑습니다!                    


다음 주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모든 걸을 잃어도 결국엔 사랑’을 말하는 소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주까지 평안하시길!

이전 01화 [수필] 우리 모두에게는 '아무튼'이 필요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