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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12. 2024

[소설] 그들은 달까지 갈 수 있을까요.

<달까지 가자>, 장류진

[이번 주 원고는 월간 공군 2023년 10월호에 실렸던 원고의 원본입니다.]


스무 살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습니다. 물론 집에서 먹고 자는 일을 다 해결했기에 완전한 독립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교통비와 외식비, 휴대전화 요금 등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어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기도 하고, 과외를 하기도 했어요. 그래봤자 스무 살이 벌 수 있는 돈은 언제나 고만고만해서 금방 통장이 바닥나기 일쑤였지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아, 십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

당시에 십만 원이면 일주일 정도는 넉넉한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었습니다. 교통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군것질도 좀 할 수 있었어요. 좀 아끼고 산다면 2주도 버틸 수 있는 돈이었지요. 그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몇억을 그냥 바랍니다. 십만 원이 아니라, 몇억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매주 로또를 사는 사람의 심리와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요?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요!)      


돈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번 주에 소개해드리려는 책 ‘달까지 가자(장류진)’가 돈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누가 3억 주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첫 장편 소설을 구상했다’라고 해요. 누가 3억 주는 소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나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의 열풍이 불던 때입니다. 제목인 ‘달까지 가자’는 ‘투자 이득의 최고점까지 가자’는 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중심인물인 다해, 은상, 지송, 세 사람은 마론 제과라는 제과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세 사람 모두 경제적 기반이 약한 인물이에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마론 제과의 정직원이 된 경우가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는 묘하게 세 사람을 다른 정직원과 차별해요. 세 사람은 근무하는 부서가 다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아보고 가까워집니다.


어느 날, 다해와 지송은 은상이 가상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에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은상은 자신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있는지 밝히며 함께 할 것을 제안해요. 처음에는 두 사람 다 난색을 표합니다. 하지만 다해는 원룸의 계약 기간이 끝나 새집을 알아보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음에도 돈이 부족한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마음이 흔들려요. 여기서 다해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나는 1 말고 1.2를 원했다. 그 추가적인 0.2가 내게는 꼭 필요했다.(73쪽)’

다해에게 필요했던 것은 0.2였습니다. 원룸보다 아주 조금의 공간이 더 있는 곳. 투룸(2)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어느 정도는 투룸을 흉내 낸 1.5룸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약간의 공간, 0.2만큼을 더 바랄 뿐인데도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그런 다해에게 ‘이더리움에 들어오라-가상화폐에 투자하라’라는 은상의 제안은 마지막 동아줄처럼 느껴집니다.


다해는 넋두리하듯 말해요. 자기 삶이 박음질 같은 삶이었다고요. 박음질은 앞으로 한 땀을 뜨고 뒤로 반 땀을 뜨고 다시 앞으로 한 땀을 뜨는 바느질의 한 방법입니다. 다해는 어쨌든 한 땀을 나아가고 반 땀을 물러서는 셈이니 제자리걸음은 아닌 삶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 걸음쯤 물러나야만 하는 삶이라는 자각은, 끝내 다해를 멈추게 합니다. 생에 처음으로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 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98쪽)’라고 생각해요. 허황하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이더리움 투자가 자기 삶에 부스터가 되어줄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자 마음먹어요. 결국 다해는 은상을 따라 투자를 감행합니다.


다해나 은상에 비해 지송은 상황이 더 나쁩니다. 그나마 다해나 은상은 우연한 기회로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상황이었지만, 지송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다가 마론 제과에 ‘오오’라는 직렬로 입사를 한 상황이었어요. ‘오오란 오피스 오퍼레이터의 약자로 정직원보다는 단순하고 제한적인 업무를 하지만 계약직보다는 조금 더 숙련이 필요하되, 그 업무가 일시적이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일일 경우 고용하는 형태(224쪽)’라고 합니다. 이런 특이성 때문에 지송은 업무 평가도 같이 받지 않고, 같은 연차의 정직원에 비해 급여도 현저히 적으며 상여금이나 성과급도 받지 못해요. 심지어 팀 사람들이 함께 점심을 먹어주지도 않을 만큼, 눈에 드러난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송은 마지막까지 다해와 은상의 이더리움 투자에 열을 올리며 반대 입장을 밝힙니다.


다해나 은상은 지송이 안타깝지만 지송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송이 없는 곳에서만 투자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던 중 세 사람이 함께 휴가를 떠나게 되고, 은상은 거의 모든 비용을 혼자 지불합니다. 지송은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을 느껴요. 말도 안 되는 투자라며 둘을 만류하고 심지어는 비난하던 지송이었지만, 결국 은상의 쓴소리에 외면하던 현실을 직시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결국 지송도 이더리움 투자를 감행합니다.


저는 투자에 딱히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막연히 투자는 위험한 도박과 같다고 생각해 왔어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투자의 다른 측면을 본 것은 아닙니다. (투자를 부추기는 그런 소설은 전혀 아니에요!) 제가 발견한 것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가진 것을 모두 걸고 싶은 절박함이었어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이제는 열심히 벌어서 잘 모으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여유 있게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이십 대이던 때만 하더라도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십 대의 현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 해도, 내가 번 돈으로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기는 쉽지 않아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은 마냥 핑크빛 미래를 그릴 수가 없지요.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어쩌면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투자로 큰돈을 벌 때마다 어쩐지 함께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돈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몇 년을 고군분투하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숫자를 보며 어쩐지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이 숫자가 뭐길래, 이토록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가.’하고요.


세 사람의 투자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요? 결말을 알고 읽는 소설은 재미가 없으니, 이 글에서 결말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둘게요. 돈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라는 삶에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우리에게 그 정도의 돈이 생긴다면 정말 우리의 삶은 달라질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현실밀착형 소설, ‘달까지 간다(장류진)’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에세이 한 권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무탈하시고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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