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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19. 2024

[수필집] 슬픔 속에서도 삶은 지속된다

<안간힘>, 유병록

한 주 사이에 바람결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내 움츠려 있던 벚꽃의 꽃망울이 붉게 여물기 시작했어요. 아마 이번 주말쯤 되면 꽃망울 속 하양 분홍 꽃잎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겠지요. 자연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봄날이 참 좋습니다.      


저는 교사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도 합니다. 시를 습작으로 쓰기도 하지만 주로 쓰는 갈래는 수필입니다. 교보문고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이름 옆에 ‘수필가’라는 단어가 뜹니다. 수필로 정식 등단을 한 적이 없지만, 수필집을 몇 개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분류가 된 것 같아요. 한동안은 소설이나 시에 비해 수필이 쓰기 쉬운 갈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수필을 쓰면서도 수필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쓰는 글을 스스로 아끼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건 사치가 아닌가.’ 생각한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딱! 접었습니다. 여전히 시와 소설을 쓰는 분들에게 경외심이 들 때가 있지만, 수필은 수필만의 매력이 분명한 갈래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수필은 삶 속에 나오는 글입니다. 소설이나 시도 삶에서 소재를 건져 올리긴 하지만, 수필만큼 진실성에 기대어 쓰는 글은 아닙니다. 수필은 구성 요건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자유로운 형식’을 수필의 큰 특징으로 가르칩니다. 형식이 자유로운 만큼 작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설계해서 써야 합니다. 너무 식상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꾸며낸 이야기가 되지도 않게. 좋은 수필은 읽은 후 감정의 정화나 생각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아,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그래, 내가 그때 느낀 마음이 꼭 이런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내 삶은 어떻지?’,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조금만 더 알아줬더라면 좋았을걸.’ 진솔한 마음으로 쓴 수필을 읽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들이 밀려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려는 수필집은 유병록 시인의 ‘안간힘’입니다. 저는 이 수필집을 읽기 전에 시인의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를 먼저 접했는데요. 특별한 정보 없이, 그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시집에서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는 삶을 발견했어요. 사실 발견이라는 단어를 쓸 것도 없는 것이, 누가 읽든 이 시집은 슬픔으로 가득한 시집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     

회사에서는 손인 척 일하지
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웃고 떠들지
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지     

슬픔을 들킨다면
사람들은 곤란해할 거야 나는 부끄러워질 거야     

네가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흔들지 몸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두지     

구덩이 속에서 너는 울고 있겠지만     

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척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
괜찮아진 척     

-<슬픔은 이제>, 유병록-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에게는 필경 어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어요. 온라인 서점을 뒤졌더니, 너무나 감사하게도 같은 시인의 수필집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안간힘’인 것을 보자마자, 무릎에 힘이 탁 풀렸어요. 시인에게 안간힘을 써야만 견딜 수 있는 슬픈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과연 내가 이 슬픔을 읽어낼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끝내 두려움이 백기를 들었고, 제 손에 ‘안간힘’이 놓였습니다.      


등나무 그늘 아래였다. 9월의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는 등나무 그늘 아래의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서 죽을 먹었다. 나와 아내, 부모님, 누나들의 가족이 마주한 자리였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었다. 사정을 모른다면, 노을 질 무렵까지 소풍에서 돌아가지 않은 화목한 가족의 모습으로 보였을까.
그날은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15쪽~16쪽)     


책의 첫 한 문단입니다. 이 한 문단을 읽고 잠시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책을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내가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생각은 책에서 도망치려는데, 어쩐 일인지 눈은 이미 다음 문장을 찾아 읽고 있었어요.     


시에서 시인이 보인 슬픔의 근원은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십여 개월을 살다 간 작은 아이가 남긴 거대한 슬픔은 시인이 쓴 시와 수필 곳곳에서 발아하고 있었어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모두 슬픔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제게는 정말 읽어내리기 힘들 만큼의 슬픔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글이었습니다. 절절한 슬픔을 토해내듯 쓴 글이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담백하게 써내려 간 슬픔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만 드리운 글이었다면, 아마 마음이 아파서 끝까지 읽지 못했을 거예요. 시인은 슬픔 속에서도 살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특별한 길은 아닙니다. 그저 매일을 살아냅니다. 곁에 있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멀리 계신 부모님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더 먼저 곁을 떠날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하늘로 날아간 아들을 잊지 않으며.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울기도 하며.      


읽는 동안, 나의 두 아이가 여전히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리움과 슬픔에 둘러싸인 글을 읽으며, 내 삶을 안도하고 감사하는 제 안의 이기심이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일 뿐, 읽는 내내 제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슬픔 속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삶이 지속되는 한 슬프기만 한 생은 없구나’였습니다. 앞으로 제게 닥칠 수많은 슬픔 속에서도 제 삶은 나아갈 것이고,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화창한 봄날에 왜 이렇게 슬픔이 가득한 책을 소개하나, 싶으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책 소개만으로도 읽기에 두려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까 조금은 염려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수필집을 이 계절에, 이 날씨에 소개해드리는 이유는 이 수필집을 쓰신 시인님의 봄날에 위로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 사사로운 마음 때문입니다.      


위로가 필요하다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으러 가야 한다. 위로가 어디선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위로는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수도 있고, 새로 만나게 될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영화관이나 산책로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
나는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 발을 내딛는다. (43쪽)     


시인님이 위로를 찾아 내디딘 발걸음이, 이렇게 미지의 독자에게 닿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행복이 내 몫이 아니어서 포기하기로 한 대신, 마음 한가운데 ‘보람’을 두기로 했다(63쪽)’는 작가님께, 봄꽃이 흐드러진 순간에는 잠깐이라도 행복의 기운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다음 주에는 인터뷰집 하나를 소개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고 많은 책이 있는데,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적이라는 것이 늘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 아버지처럼 시간을 돌리고 또 돌려가며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내고 싶은 좋은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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