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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05. 2024

[시집(시 엮음집)]삶에서 발견한 시를 반짝이게 엮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김선경 엮음)

3월 첫 주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새 학기가 되는 3월이 되어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는 느낌이 드는데요. 올해는 비록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지만,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둘째의 유치원 입학으로 여전히 새해 같은 3월을 맞이하는 중입니다. 설렘과 두려움, 긴장과 두근거림이 공존하는 3월이네요. 독자님들의 3월 첫 주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아무쪼록 몸도 마음도 건강한 시작이시길 바라며, 이번 주의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지난주에 예고해 드린 대로, 이번주에 소개해드리는 책은 시집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 엮음집이에요.) 지금의 저는 시를 매개로 한 책을 썼을 만큼 시를 아끼고 사랑합니다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의 프롤로그에도 밝혔듯이, 저는 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명확하지 않은 해석과 낯선 표현들을 분석하고 외우고 평가하는 것에 거부감이 심했거든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국어교육을 받은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이유로 시를 꺼리고 멀리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은 엄마가 된 이후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뭐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싶은데 무엇도 여의치 않았어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짬을 내서 책을 보는 것이었지만 호흡이 긴 책은 읽기가 어려웠어요. 집중도 잘 되지 않았고 긴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때 아주 우연히 시 한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조용한 일, 김사인 -


아이들이 잠든 밤, 어두운 조명 하나를 켜놓고 식탁에 앉아서 시를 읽는데 참 좋더라고요. 마음이 고요해지고 차분해졌어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건 기적처럼 고마운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시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서점에 갔습니다. 여러 시집을 읽었지만 시 읽기가 처음인 저에게 특정 시인의 시집은 선뜻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익숙한 시인 이름이 쓰인 시집을 펼쳐봐도 어떤 시는 술술 읽히지만 어떤 시는 또 난해함에 헤매기 일쑤였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시 엮음집’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김선경 엮음)였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101‘입니다. 아마 처음 엄마가 되어 느끼는 행복감만큼이나 두려움이나 쓸쓸함도 크던 때라 부제에 마음을 크게  뺏겼던 듯해요. 목차를 살펴보니 더 좋더라고요.


1부. 어느 날 시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2부.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날
3부. 인생의 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들
4부. 이누이트 족의 언어에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없는 이유
5부. 나는 정말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6부. 무심코 하는 말들을 위한 기도
7부. 시가 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어느 날 시가 마음속으로 들어왔다는 시작부터, 시가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마지막까지. 읽기 전부터도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목차만 보고도 이렇게 설레는 시집이라면 , 인생 시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와의 만남은 저와 시의 진정한 첫 대면이었습니다.


각 부의 시작 지점에 실려 있던 저자의 짧은 글은 덤이었습니다. 시작부터 공감과 위로를 느꼈어요. 이런 마음으로 고른 시라면, 믿고 읽어도 좋겠다, 한두 편쯤 마음에 닿지 않아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시의 세계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안내 표지 같은 글을 먼저 읽으며, 다음에 소개될 시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한없이 부풀었어요.


저자가 고르고 고른 시를 한 편 한 편, 꼭꼭 씹어 먹듯 읽으며 당시의 저는 많이 울고 많이 미소 지었습니다. 어떤 날은 시에 파묻혀 같은 시를 읽고 또 읽고, 베껴 쓰고 또 쓰면서 지난한 하루를 견뎠어요. 또 다른 어떤 날은 시어 하나에 마음을 뺏겨 종일 알사탕 굴리듯 그 시어 하나를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저는 시와 진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생소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너무너무 공감하는 바예요. 그런 분들일수록 특정 시인의 시집을 골라 읽으시는 것보다 특정한 맥락을 바탕으로 여러 시를 엮은 엮음집을 시도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시 엮음집은 대중에게 시를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가 쉽게 이해되고 수월하게 삶과 연결됩니다.


저는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덕분에 시와 가까워졌고, 작년 말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와 거리 두기를 하던 국어교사에게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는 은인인 셈입니다. 삶에서 시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삶으로 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까요. 이 책의 뒤표지에는 ‘내 삶을 뻔한 결말로부터 구해 준 고마운 시들에 대하여’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요. 이제와 새삼, 이 문구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시를 만나 제 삶은 분명 좀 더 다채로워졌고 더 향기로워졌어요.


봄입니다. 여전히 시린 날도 있지만, 앞으로 올 날들은 대체로 밝고 맑고 경쾌하겠지요. 올봄에는 겨우내 굳어있던 시린 마음에 햇살보다 따스한 시 한 편, 봄꽃보다 향기로운 시 한 편 놓아보심이 어떨까요.


다음 주에는 장편 소설 한 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현실적 인물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린 소설이에요.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3월 첫 주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또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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