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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27. 2024

[장편 소설] 결국엔 사랑, 사랑을 그리는 소설

소설 좋아하시나요? 고백하자면 저는 소설에 입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최근 2-3년간 읽은 소설이 평생에 걸쳐 읽은 소설보다 더 많을 만큼, 소설의 재미를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책을 읽더라도 인문학이나 사회학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적 허영이었다 싶습니다. 뭔가를 배우고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야 책을 읽었다는 감각을 느꼈으니까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읽어냈다’는 감각만 남은 책들이 쌓여가도 이상하게 소설에는 손이 잘 닿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위해 읽는 소설 정도가 전부였을 만큼 책 편식이 심했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려는 책은,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라는 장편소설입니다. 이 책은 제게 아주 특별한 책인데요. 본격적으로 소설 읽기에 입문한 이후 처음으로 ’ 도장 깨기‘하듯 한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었다가 만나게 된 소설이거든요. 최진영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일주일>이라는 단편소설집이었는데요.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력에 감탄하며 그의 작품을 있는 대로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최진영 작가님이라면 <구의 증명>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겨울방학>, <내가 되는 꿈>, <당신 옆을 스쳐간 소녀의 이름은>, <이제야 언니에게>,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단 한 사람>까지 모든 작품이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해 내는 매력적인 소설들입니다.


모든 소설을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해가 지는 곳으로>에 집중해보려 해요. 가장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고, 주변에 많이 권했던 책이거든요. 어쩌면 진부한 감정인 ‘사랑’을 이토록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가들의 루틴을 다룬 에세이집 <작가의 시선: 소설가의 하루>에서 최진영 작가님은 <해가 지는 곳을>를 ’가장 부담 없이 자유롭게 쓴 글‘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이런 소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작가님의 소설 세계에 부러움을 넘어 존경이 샘솟습니다. 그만큼 사건 전개도 문체도 매력적인 소설이랍니다!


<해가 지는 곳으로>는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의 창궐로 학살이 자행되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떠도는 삶을 살게 된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7년에 발표된 소설인데(이것도 놀라웠습니다!), 저는 코로나 19가 한창일 때 이 소설을 접하게 된 바람에 더 몰입해서 읽었어요. 코로나19는 종식되었다고 하지만, 앞으로 그보다 더 심한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니 소설 속 장면들이 허투루 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어쩌면 머지않아 경험할지도 모르는 일처럼 느껴져 때론 섬뜩하고 때론 두려웠어요.


죽음이 너무 흔해진 곳에서도 권력은 생깁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을 하나라도 더 가진 이는 못 가진 이보다 힘이 세요. 모두 극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오히려 인간의 잔혹함이 더 드러납니다. 약자는 더 약해지고 강자는 더 강해집니다. 목숨을 담보로 잡힌 약자들은 힘 있는 자들의 노예가 되어 물건처럼 다루어져요. 타인을 믿을 수 없기에 어떤 호의에도 쉽게 마음을 내어줄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남아야 할까요. 사랑하는 이를 이미 잃었거나 언젠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생존해야 할까요.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답은 선명합니다. 바로 ‘사랑’이에요. 인물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마음을 기대며 사랑을 나눕니다. 오직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사랑하는 것뿐이며, 사랑만이 서로를 지킬 수 있는 힘임을 보여주어요.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끝내 살아남을 수 있다 믿기에, 역으로 사랑이 없다면 살아남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일상 속에서 사랑을 지키고 계신가요. 사랑이 너무나 흔한 이곳에서는 외려 사랑이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을 미뤘다. 내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하면 되니까. 기나긴 미래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젠 그럴 수 없다.(99쪽)“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는 사랑이 가장 먼저 미뤄집니다. 미래가 있다는 믿음은 오늘의 사랑을 쉽게 연기하게 해요. <해가 지는 곳으로>의 인물들에게는 미래가 없어요. 찰나의 시간도 보장할 수 없지요. 그들은 깨닫습니다. 사랑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요.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100쪽)


오늘 글은 시 한 편으로 맺어보려 합니다. 제 책 <시의 언어로 지은 집>에서도 소개했던 시인데요. <그렇게 물으시니>(유용선)입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언제 시를 써요? 선생님이 시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요. 보여주시는 것들은 모두 옛날에 쓰신 건가요?
혼자 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쓰지요.
주변에 누가 있으면 시가 써지지 않나 봐요?
그런 건 아니지만 주변에 누가 있는데 시를 쓰면 안 되지요.
예? 그건 왜 그런 건가요?
주변에 누가 있을 때는,
……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물으시니>, 유용선


다음 주에는 시집을 한 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시는 어렵고 난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좋은 책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2월 마지막주네요. 마무리 잘하시고, 3월에도 또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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