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 물방울을 붙들고(손택수)
[2024 시 쓰는 가을] 두 번째 시
한 모금 물방울을 붙들고(손택수)
아프리카 어느 부족 여인들은 지하수가 흐르는 땅의 나무 그늘엔 실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지하수를 감지한 나무 그늘은 지하수가 없는 땅의 그늘과는 그 빛깔부터가 달라서, 아무리 급해도 물이 오염되면 쓰나, 멀찌감치 떨어져 일을 본다지
그것 참, 내 눈엔 똑같아 보이는 그늘도 그 농도부터가 다르다니, 땅의 체질에 따라 저마다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니, 나뭇잎 그늘 한 장에서 수십 미터 지하의 물기를 감지할 줄 아는 눈을 갖기 위해 초원은 얼마나 바짝 목이 탔을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한 모금 물방울을 붙들고 푸르게 타올랐던 시절, 내 안색만 보고도, 눈빛만 보고도, 그 깊은 곳 물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한 사람을
출처 :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여인들은 땅의 물기를 감지한다고 합니다. 빛깔부터가 다르다고 하네요. 그 빛깔을 알아보는 여인들은 지하수 흐르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결코 실례를 하지 않는다고 해요.
이 시는 그 빛깔을 알아차리는 여인들의 눈과 그렇게 다른 빛깔을 내기 위해 목마름에 타올랐을 초원에 눈길을 줍니다. 그리고 화자인 ‘나’의 삶으로 나아가요. ‘나’가 ‘나’만의 빛깔을 내기 위해 ‘푸르게 타오르던 시절’과 그 시절의 ‘내 안색만 보고도, 눈빛만 보고도, 그 깊은 곳 물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한 사람’을 떠올려요.
자연스레 그런 시절이, 그런 ‘한 사람‘이 떠오르는 시입니다. 푸르게 타올랐다는 표현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사람마다 ‘청춘’은 다른 시절로 정의되겠지요. 청춘의 시절, 그렇게 빛나는 시절에 나를 알아봐 주고 살펴봐주었던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 시절,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저를 지켰고, 살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애써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
그런 눈과 마음에 기대어 앉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했던 시절.
여러분의 그런 시절은, 그런 사람은 언제, 또 누구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