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무슨 일 하세요?"
이 질문에 담긴 속뜻은 무엇일까? 아마도 명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직업이나 수익이 나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그냥 이것저것 해요."
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렇다. 이것저것 한다. 그중의 대부분은 아이들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게 가장 큰 시간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다. 그래서 정확히 나를 소개한다면
" 네 주부입니다."
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남자가 주부라고 소개하는 건 상대방도 어색하고 나도 어색하게 만든다. 그다음 질문은 의외로 재미 날 수 있지만 그 재미난 질문들을 사람들은 잘 이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가기도 귀찮고 해서 "이것저것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남자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집안일과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을 두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백수'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이 '백수'가 '집안일'을 주로 하는 경우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여자이면서 집안일을 주로 할 때는 커뮤니티와 공동체가 있다. 그런데 남자이면서 집안일을 주로 할 때는 커뮤니티와 공동체가 없다. 한국인들은 공동체 중심의 문화에서 자라서 정체성을 공동체 내에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정체성에 상당히 혼란을 가져오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남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것이 사실상 여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육체적인 이유가 아닌 정신적인 이유가 크다. 이들 남자들은 집안일과 육아를 할 때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래 집안일과 육아라는 일 자체가 외롭고 고독하고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는 있다. 어떠한 커뮤니티나 공동체가 정신적인 위로나 가끔의 육체적인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결국 그 일을 전적으로 해내는 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을 잠깐의 도움을 의지한다고 하여서 그 일 자체가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러한 육아와 집안일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남자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거뜬히 이 일을 잘 해낼 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인 시선은 곱지 않다.
뭔가 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뭔가 느껴지는 그 느낌이 있다. 여자들이 사람들의 속내를 남자들보다 더 잘 파악하는데, 집안일과 육아를 계속하다 보니 나도 점점 이런 촉이 생기는 것 같다. 타고난 게 아니라 일이 만들어내는 결과인 것인가?
백수라고 소개하기에는 뭐하고,
그렇다고 주부라고 소개하기도 뭐하다.
그냥 나를 소개하기를 포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으니,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나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나 역시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직업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려는 습관이 몸속 깊이 스며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직업이나 명함을 요구하는 일은 자제하는 게 더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라는 깨달음도 든다.
결국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봐야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 이것저것 많은 경험들은 분명히 우리 삶의 영역을 더 넓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