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엄마가 갑자기 예전에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당시 횟집을 운영하던 엄마는 손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의 이름이랑 생년월일시를 들은 손님이, 나는 이것저것 재주가 많으나 한국에서는 잘 안 풀릴 것이며, 방랑가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고,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본인이 원하는 대학엔 가지 못 할 것이고, 좀 늦게 잘 될 팔자라고 했다는 것이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분이 그때 말씀하셨던 것이 모두 맞는 상황. 비록 내가 잘 되려면 얼마나 더 늦은 시기가 돼야 하는 것인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정해진 팔자, 사주를 맹신하진 않는 편인데 내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나랑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말하고 맞추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분이 말씀하신 방랑자 팔자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역마살과 비슷한 맥락일 텐데 나처럼 외국에서의 삶을 결정한 사람들은 모두 역마살 끼가 있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민이라는 것,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본인의 성향이 외국 사회와 잘맞고, 타지에서 이루고 싶은 다른 목표가 확실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한데 이 어려운 일을 결국은 실천하여 행동하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있었고, 그 숫자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그럼 이들의 사주에는 '이민'이라는 두 글자가 있을까? 나 또한 내가 사주를 그렇게 타고나서 이 먼 곳까지 와서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사주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성격이나 환경, 다른 요소들로 인해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건지 의아해졌다.
사주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내 의지로 이 곳에 왔고 참 열심히도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이동 계획이 끝이 없다는 데 있다. 우선 토론토에서 5년을 산 후 벤쿠버에서 몇 개월을 살았으며 한국에서 3년동안 살다가 다시 토론토로 돌아왔다. 일단 이 곳에서 최소 2년 반 정도 살고 난 후의 계획이 없다. 몬트리올 이나 일본,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정도가 후보지이다. 만약 공모전에 당선 되면 만사 제쳐두고 한국으로 달려가겠지만... 방랑자의 기질을 타고났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원래 타고나는 것이던 아니면 크면서 내가 정한 것이던 나는 한 도시에서, 한 직장에서 오래 있으면서 자리를 잡고 정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떠나 힘들게 타지 생활을 하면서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난 친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모든 이민자들이 나처럼 떠도는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가끔은 나도 이런 내 인생관과 계획이 의심스럽고 걱정스러운데 딱 그런 시기에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정답이 아닐지라도 '나는 왜 이럴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다. 난 그냥 원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