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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Feb 14. 2019

10. 휴양지에서 나 혼자...

지구 반대편으로

따가우리만큼 뜨거운 햇살 아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뜨거운 공기가 내 온몸을 에워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휴양지로 유명한 멕시코 칸쿤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인 플라야 델 카르멘에 크리스마스 일주일 동안 게스트하우스만 예약해서 무작정 찾아왔다. 마이애미 숙소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가 이곳에 있으니 놀러 오라며 초대해 준 덕에 혼자지만 용기를 냈다. 


내가 사는 곳은 겨울이 약 6개월 정도 지속되고, 햇빛이 거의 없으며 추울 땐 체감 온도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인지라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휴양지로 휴가를 떠난다. 나 또한 겨울마다 남쪽 휴양지에 일주일 일정으로 여행을 갔다. 마이애미부터 카리브해에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투명한 바다의 파도소리는 나를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칸쿤지역에 당당하게 혼자 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어울렸다. 내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특히 유명한 데여서 몇몇의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차를 렌트해서 다니기도 하고, 클럽투어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영어를 잘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는 재미가 있었고 몇 개의 스페인어 표현을 외웠다가 가끔 말하면 정말 좋아했다. 그들이 착한 사람들이라는 걸 말이 통하지 않아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 덕에 여행이 더욱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휴가를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수영을 못하므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느지막이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서 물에 잠깐 들어갔다가, 책을 읽었다가, 또 졸리면 한숨 잤다가, 다시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출출해지면 슬슬 숙소 근처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있는 다른 여행자들과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추러 갔다 숙소로 돌아오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 있다. 이렇게 보내는 일주일의 달콤한 휴식은 지난 1년 동안 쌓였던 온갖 스트레스와 압박감,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있던 몸과 마음을 모두 풀어준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휴가를 좋아하고 즐긴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수영을 못 하는데, 어릴 적부터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미처 배우지 못했다. 예전에 쓰나미 관련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다가 속이 너무 안 좋고 어지러워서 식은땀을 흘리며 영화관에서 나온 적이 있었다. 무튼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데, 반대로 도시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도시의 건물 숲이, 야경이,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편리하고 빠른 삶이 너무 좋다. 그래서 처음 휴가를 갔을 때 뻥 뚫린 하늘과 맑은 공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를 보고 '와! 너무 좋다. 근데 이제 뭐 하지?'라고 생각했다. 처음 며칠은 지루하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아 되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점점 적응이 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고,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엔 아쉬운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마저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휴양지를 사랑하게 되었고 코로나로 온 세상이 멈추기 전까지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휴양지로 떠났다. 핸드폰 로밍도 굳이 따로 하지 않는데 데이터를 써도 어차피 느리기 때문에 딱 일주일 동안 세상과 단절한 채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혼자 가면 심심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외동으로 자라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데 도가 텄기 때문에 딱히 심심하거나 외롭지는 않다. 책도 읽고,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때로는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면서 일주일의 시간을 나름 알차게, 지루하지 않게 보낸다. 

해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따뜻한 햇볕 아래 눈을 감고 누워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도시에서 열심히 사느라 방전된 나 자신을 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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