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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Oct 30. 2023

세 공주의 날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41)

(대문 사진-첫째가 일본에서 찍어 옴~)


   지난 금요일은 오랜만에 우리 세 공주들과 함께 바깥에서 식사를 했다.(물론 우리 왕비님도 모시고...) 그날은 일본에 수학여행갔던 첫째가 돌아온 날이었고 둘째가 중간고사 시험을 다 친 날이었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막내의 어린이집에 내가 학부모 참여수업을 갔던 날이기도 했다. 모두들 한가지씩의  미션(?)을 마친 날이었기 때문에 할말다들 많았다. 첫째는 수학여행으로 갔던 하우스텐보스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둘째는 그날 친 국어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렸는데 그게 왜 틀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막둥이는... 그저 밖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좌-일본으로 수학여행간 첫째, 오겡끼 데스까?~, 우-학부모 참여수업에서 콩으로 만든 마라카스(?)을 흔들고 있는 막둥이)


   첫째는 일본에 수학여행을 갔다오면서 온가족 선물을 다 사왔다. 나에게는 무슨 밤만쥬(?)인가를 사왔는데 아직 포장도 뜯어보지 못했다. 둘째는 국어와 역사는 괜찮게 쳤는데 과학과 수학은 망쳤다고 했다. 난 속으로 아빠도 문과 머리인데 둘째도 내 머리를 닮은 게 아닌가 하고 괜히 찔렸다. 막둥이는 장면을 다 먹고 집에 가자고 하자 집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좌-첫째가 일본 갔다가 사 온 내 선물, 우-자장면을 먹다가 집에 가자고 하니까 울음을 터뜨리는 막둥이)


   이렇게 세 공주가 모이는 날이면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세 공주들이 제각기 수다를 떨면 귀가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 저녁식사 시간을 사랑한다. 이 시간에 바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행복감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작년 이태원 사건에 대한 다큐를 한편 보았다. 1년전 그날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이 나와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https://youtu.be/jiLo6Tmgh8w?si=0LfOR__cJGQEdsWh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내 목요일 저녁을 책임지는? KBS 다큐 인사이트~)


   그 내용중에는 한 희생자의 아버지가 나와서 딸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었다.(13분 정도부터 나옴) 이상은이라는 26살의 딸을 이태원에서 잃어버린 아버지의 인터뷰였는데 정말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 분도 나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의 딸의 일상을 기록해 온 아버지였다. 그 딸은 어려운 시험을 치느라 몇년간의 고생끝에 겨우 합격을 하고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는 회사에 있다가 전화를 받게 되어서 맘껏 기뻐하거나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생했다'라고만 말한 것이 너무나 후회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내 딸들에게 미리미리 사랑한다, 축하한다는 말을 수시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긴 하지만 나도 만약 20여년을 키워온 우리 딸을 저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린다면 정말 세상에 분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아버지의 얼굴에선 이제 분노라곤 찾아볼 수 없고 곱게 키워온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만이 남아있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20여년동안 딸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아침 인사를 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하는 모든 일상의 행복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담담히 그 딸을 보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 악몽같은 밤이 지난 지 꼭 일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밤의 기억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지워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밤 잠시 생각해 보고 싶다. 평범한 시민이 일상속에서 길을 걷다가 압사당하는 그런 일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모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리고 일년전 그 일을 이제는 모두 정리하고 유해서 깨끗이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여년동안 가꿔 온 이런 아버지의 작은 행복을 이제라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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