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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Sep 06. 2024

막둥이의 생일 축하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55)

(사진 - 티스토리 펌)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낮에는 엄니와 누나와 함께 점심을 같이 했다. 그리고 저녁엔 마눌과 함께 올 막둥이를 기다렸다. -고딩과 중딩인 두 딸들은 학원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지 못하고 케잌만 같이 먹기로 했다.- 막둥이는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내게 애교를 부렸다.


"아빠, 오늘 생일이지?"


"응, 그래."


"밥 먹으러 어디 갈거야?"


오자마자 밥 얘기다. 하기야 그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것도 내 생일밥을 막둥이가 먼저 챙기다니... 막둥이도 벌써 그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쿠*쿠* 갈까?"


며칠 전부터 아빠 생일에 쿠*쿠*에 가자고 하던 막둥이가 생각나 슬쩍 떠 보았다. 막둥이는 지난번 작은 언니생일 때 거기 가서 '쵸컬릿 분수'를 보고 나더니 한동안 거기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이번 아빠 생일에는 거기 갈 거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기도 했었다.


"아니, 오늘은 언니들이 없어서 재미없을 것 같애, 그냥 본* 가자"


'응?, 이것 봐라, 의왼데?'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랬다. 이 꼬마 녀석이 벌써 식당의 맛이나 분위기 뿐만 아니라 누구와 같이 가는가도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들과 가서 쵸컬릿 분수에 머쉬 멜로우를 찍어 먹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언니들이 없으니 그런 놀이를 할 수 없어 다른 음식점에 가자는 말이었다.                         


(막둥이가 좋아하는,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 나올 법한 쵸컬릿 분수-네이버 블로그 펌-)


'이것 참..."


막둥이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이제 다 컸구나 싶으면서도 조금 있으면 내 품을 떠나겠다는 약간 아쉬우면서도 설레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 오늘은 막둥이가 먹고 싶은 본* 가자."


난 점심을 잘 먹어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에 막둥이가 가자고 하는 대로 '본*'로 갔다. 마눌과 함께 한창 고기를 굽는 동안에도 막둥이는 거기에 있는 놀이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면서 우리가 구워놓은 고기를 한점씩 얻어먹었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고 나서는 서비스로 마련돼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이스크림 기계 손잡이를 당길 때 자기는 콘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받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이스크림을 양껏 돌려서 층층히 쌓아주니 그걸 먹으면서 말했다.


(바~로 이 맛 아입니꺼~ㅋ)-다음 카페 펌-


"여기 아이스크림이 젤 맛있어."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방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아빠 생일을 이용(?)할 줄도 알고...'


난 정말 막둥이의 눈부신(?) 성장에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모르는 생일저녁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 생일 케잌은 내가 고를래~"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속으론 '내 생일케잌을 니가 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너무 귀여워서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 앞에 차를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아빠는 차에 있을 테니까 엄마하고 저 제과점 가서 아빠 케잌 막둥이가 골라 와~^^"


속으로 어떤 케잌을 골라올까 좀 궁금하기도 하고 어차피 내 생일이지만 막둥이가 제일 좋아하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케잌으로 고르는 게 맞다는 생각에 그러라고 했다. 물론 뽀로로나 헬로키티가 장식되어 있는 케잌을 고르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집에 와서 케잌을 꺼내서 테이블에 놓고 촛불을 꽂는데(마눌이 센스 있게도 숫자로 된 촛불을 사와서 그리 많이 꽂지 않아도 됐다.)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블루베리 케익이었다.


"아빠가 이걸 좋아할 것 같아서 블루베리 케잌으로 골랐어~"


이런, 이런, 이런 다섯살 짜리를 봤나~ 내가 다섯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우리 막둥이가 지금 내 눈앞에서 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땐 아빠 생일이라고 뭘 챙기지도 않았지만...ㅠㅠ- 이 꼬맹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배운 걸까? 혹시 유*브로? 정말 기가 차고 코가 찰 일이다.


(기가 차고 코가 차는? 막둥이~^^;;)


어쨌든 그렇게 블루베리 케잌으로 생일 축하를 하고 숫자로 된 촛불을 불었다. -나이수대로 꽂았으면 촛불이 많아 한번에 안 꺼지면 어쩌나 했는데 숫자 두개로 된 촛불이라 부담없이 끌 수 있었다. (아무리 촛불이라도 소방관이 한번에 못끄면 안되니까~ㅋ) 그리고 선물 증정(?) 타임이었는데 막둥이가 어디선가 자기 이불을 끌고 오는 것이 아닌가? 이불을 끌고 오느냐고 물으니까 안에 선물이 있단다.(혹시 써프라이즈의 개념을 벌써 알고 있는 건가?~ㅋ) 아니나 다를까 이불 안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도넛 상자같은 작은 상자였다. 그런데 안에 들어있는 것은 도넛이 아니었다. 그걸 선물이랍시고 내게 주는데 열어 보니 자기가 그린 아빠 그림, 갖고 놀던 블럭 장난감, 연필 한자루, 구슬 하나, 등등, 자기에게는 보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로 보일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눈에는 무엇보다도 눈부신 보물로 보였다.-(아쉽게도 너무 감동 먹어서 블루베리 케잌과 선물 상자를 사진으로 남겨 두는 걸 깜박 했다.) 그리고 그 블루베리 케잌을 우리는 모두 게걸스럽게 먹었다. 난 배가 너무 불러서 그 위에 있는 블루베리 알 하나만 먹었다.


나는 녀석이 너무나 기특해서 막둥이를 꼬옥 안고 이마에 뽀뽀를 했다. 이런 보물 같은 녀석이 있을까? 정말, 내 나이 오십에 가장 잘한 일은 널 낳은 것?(물론 내가 낳은 건 아니지만...)이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마눌이 너무 고마워 이쁘게 보일 정도였다. 물론 샴페인을 조금 마시긴 했지만...ㅎ


이렇게 생일 잔치(?)를 떠들썩하게 하고 나니 '인생 뭐 잇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이 50에 변변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 가장 큰 보물은 세 딸을 낳은 것과 가끔씩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그 딸들을 낳아준 마눌과 그런대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일상의 평온이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이 세상과 빠이빠이 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이어지길, 그래서 우리 막둥이가 시집 가서 애 낳는 것까지 보고 벽에 *칠할 때까지 지긋지긋하게 살련다. 그 때도 우리 막둥이가, 아니, 막둥이의 딸이 또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를, 그리고 그 녀석의 보물을 선물로 받고 기뻐할 수 있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이번 생일의 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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