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낮에는 엄니와 누나와 함께 점심을 같이 했다. 그리고 저녁엔 마눌과 함께 올 막둥이를 기다렸다. -고딩과 중딩인 두 딸들은 학원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지 못하고 케잌만 같이 먹기로 했다.- 막둥이는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내게 애교를 부렸다.
"아빠, 오늘 생일이지?"
"응, 그래."
"밥 먹으러 어디 갈거야?"
오자마자 밥 얘기다. 하기야 그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것도 내 생일밥을 막둥이가 먼저 챙기다니... 막둥이도 벌써 그런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쿠*쿠* 갈까?"
며칠 전부터 아빠 생일에 쿠*쿠*에 가자고 하던 막둥이가 생각나 슬쩍 떠 보았다. 막둥이는 지난번 작은 언니생일 때 거기 가서 '쵸컬릿 분수'를 보고 나더니 한동안 거기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이번 아빠 생일에는 거기 갈 거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기도 했었다.
"아니, 오늘은 언니들이 없어서 재미없을 것 같애, 그냥 본* 가자"
'응?, 이것 봐라, 의왼데?'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랬다. 이 꼬마 녀석이 벌써 식당의 맛이나 분위기 뿐만 아니라 누구와 같이 가는가도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들과 가서 쵸컬릿 분수에 머쉬 멜로우를 찍어 먹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언니들이 없으니 그런 놀이를 할 수 없어 다른 음식점에 가자는 말이었다.
(막둥이가 좋아하는,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 나올 법한 쵸컬릿 분수-네이버 블로그 펌-)
'이것 참..."
막둥이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이제 다 컸구나 싶으면서도 조금 있으면 내 품을 떠나겠다는 약간 아쉬우면서도 설레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 오늘은 막둥이가 먹고 싶은 본* 가자."
난 점심을 잘 먹어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기 때문에 막둥이가 가자고 하는 대로 '본*'로 갔다. 마눌과 함께 한창 고기를 굽는 동안에도 막둥이는 거기에 있는 놀이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면서 우리가 구워놓은 고기를 한점씩 얻어먹었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고 나서는 서비스로 마련돼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이스크림 기계 손잡이를 당길 때 자기는 콘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받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이스크림을 양껏 돌려서 층층히 쌓아주니 그걸 먹으면서 말했다.
(바~로 이 맛 아입니꺼~ㅋ)-다음 카페 펌-
"여기 아이스크림이 젤 맛있어."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방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아빠 생일을 이용(?)할 줄도 알고...'
난 정말 막둥이의 눈부신(?) 성장에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모르는 생일저녁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빠 생일 케잌은 내가 고를래~"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속으론 '내 생일케잌을 니가 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너무 귀여워서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 앞에 차를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아빠는 차에 있을 테니까 엄마하고 저 제과점 가서 아빠 케잌 막둥이가 골라 와~^^"
속으로 어떤 케잌을 골라올까 좀 궁금하기도 하고 어차피 내 생일이지만 막둥이가 제일 좋아하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케잌으로 고르는 게 맞다는 생각에 그러라고 했다. 물론 뽀로로나 헬로키티가 장식되어 있는 케잌을 고르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집에 와서 케잌을 꺼내서 테이블에 놓고 촛불을 꽂는데(마눌이 센스 있게도 숫자로 된 촛불을 사와서 그리 많이 꽂지 않아도 됐다.)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블루베리 케익이었다.
"아빠가 이걸 좋아할 것 같아서 블루베리 케잌으로 골랐어~"
이런, 이런, 이런 다섯살 짜리를 봤나~ 내가 다섯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우리 막둥이가 지금 내 눈앞에서 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땐 아빠 생일이라고 뭘 챙기지도 않았지만...ㅠㅠ- 이 꼬맹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배운 걸까? 혹시 유*브로? 정말 기가 차고 코가 찰 일이다.
(기가 차고 코가 차는? 막둥이~^^;;)
어쨌든 그렇게 블루베리 케잌으로 생일 축하를 하고 숫자로 된 촛불을 불었다. -나이수대로 꽂았으면 촛불이 많아 한번에 안 꺼지면 어쩌나 했는데 숫자 두개로 된 촛불이라 부담없이 끌 수 있었다. (아무리 촛불이라도소방관이 한번에 못끄면 안되니까~ㅋ) 그리고 선물 증정(?) 타임이었는데 막둥이가 어디선가 자기 이불을 끌고 오는 것이 아닌가? 왜 이불을 끌고 오느냐고 물으니까 그 안에 선물이 있단다.(혹시 써프라이즈의 개념을 벌써 알고 있는 건가?~ㅋ) 아니나 다를까 그 이불 안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도넛 상자같은 작은 상자였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도넛이 아니었다. 그걸 선물이랍시고 내게 주는데 열어 보니 자기가 그린 아빠 그림, 갖고 놀던 블럭 장난감, 연필 한자루, 구슬 하나, 등등,자기에게는 보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로 보일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무엇보다도 눈부신 보물로 보였다.-(아쉽게도 너무 감동 먹어서 블루베리 케잌과 선물 상자를 사진으로 남겨 두는 걸 깜박 했다.) 그리고 그 블루베리 케잌을 우리는 모두 게걸스럽게 먹었다. 난 배가 너무 불러서 그 위에 있는 블루베리 알 하나만 먹었다.
나는 녀석이 너무나 기특해서 막둥이를 꼬옥 안고 이마에 뽀뽀를 했다. 이런 보물 같은 녀석이 있을까? 정말, 내 나이 오십에 가장 잘한 일은 널 낳은 것?(물론 내가 낳은 건 아니지만...)이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마눌이 너무 고마워 이쁘게 보일 정도였다. 물론 샴페인을 조금 마시긴 했지만...ㅎ
이렇게 생일 잔치(?)를 떠들썩하게 하고 나니 '인생 뭐 잇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이 50에 변변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 가장 큰 보물은 세 딸을 낳은 것과 가끔씩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그 딸들을 낳아준 마눌과 그런대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일상의 평온이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이 세상과 빠이빠이 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이어지길, 그래서 우리 막둥이가 시집 가서 애 낳는 것까지 보고 벽에 *칠할 때까지 지긋지긋하게 살련다. 그 때도 우리 막둥이가, 아니, 막둥이의 딸이 또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를, 그리고 그 녀석의 보물을 선물로 받고 기뻐할 수 있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이번 생일의 내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