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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May 15. 2020

스승의 날 단상

아침 동산에서(3)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 있을까 하는 말들도 많이 하지만, 난 아직도 우리 사회엔 선생님을 넘어서 스승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스승이란 생각도 든다. 젊은 때는, 아니 어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세월이 갈수록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 남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릴 때는 그런 줄을 몰랐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시시하게 보이고, 대학 교수님들도 모두 속물들로 보였었다.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 잘난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야 그분들이 얼마나 대단하신가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그 어려운 공부를 수십 년 동안 하시고, 또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험에 합격하신 분들이 아니던가?. 그것만으로도 박수를 받고 존경을 받아야 하지만 거기서 그치질 않고 또 무지몽매한 후학들을 가르치겠다고 여생을 바치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하거늘 어릴 때는 그걸 모르고 까불고 날뛰었던 일들이 종종 있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 중에 가장 생각나는 선생님은 아무래도 고3 담임선생님이다. 그분은 국어 선생님이기도 했는데 나도 국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를 특별히 이뻐라 하셨다. 내가 대학 원서를 쓰기 전까지는...

(아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고3 담임선생님이시다.)


   요즘도 원서를 쓰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때(?)만 해도 원서를 쓰는 것이 고 3의 큰 일이었다. 자기가 갈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니,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선택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담임선생님과 의논해서,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의 동의를 얻어 결정하게 된다. 그런 큰 일 앞에서 -소설의 전개과정을 빌어서 말하자면- 선생님과 학생은 의견이 대립하다가(발단), 기싸움으로 펼쳐져(전개), 갈등하다(절정), 마무리를 짓게 되는 것이다.(결말). 보통 학생은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성적보다는 조금 더 높은 점수의 학교와 학과를 지망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입장에선 자신의 제자들 중 한 명이라도 더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서 그 학생의 성적보다는 조금 더 낮은 점수의 학교와 학과를 지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나름 지방의 명문대라는P대의 P과를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D대학을 권유하셨다.


   "인마야, 니 지금 P과 갈라고 그라나?, 거기 나오면 취직 안 되는 거 알제?, 거기 말고 조금 낮춰서 D대 가라, 그 학교에 무슨 과라도 다 원서 써줄게, 니 성적이 아까워서 그런다, 그 성적 가지고 그 과 나와봤자 취직도 안돼! 그러니까 내 말대로 D대의 취직 잘 되는 과 가라."


    선생님은 이렇게 나를 구슬리고 협박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나 잘되라고 생각해서 하셨던 말씀이셨는데 난 어린 마음에 어떻게든 P과에 가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P과가 좋았고 그 과를 나오면 내 인생의 모든 길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 P대의 P과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황소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며칠간 계속된 선생님과 나와의 줄다리기에서 결국 이긴 사람은 나였다. 선생님은 교무실 책상 서랍에서 한 보루의 담배를 꺼내더니 -애연가셨던 그 선생님은 항상 3보루의 담배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계셨다. 그게 없으면 불안해서 수업을 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중에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말씀하셨다.


    "니 같은 놈은 처음 본다. 내가 졌다, 네가 그리 좋다니 거기 가서 한번 잘해 봐라. 그리고 거기 나와서 내 원망하지 마라!"


    선생님은 그렇게 내 앞에서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시면서 -그때만 해도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담배 피우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나지막이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대학에 그 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고 선생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 죄송합니다.ㅠㅠ- 지금이라면 선생님이 왜 그리 반대하시는지, 그것만이라도 알아보려 했을 텐데...


   결국 나는 그 대학, 그 과에 시험을 쳤고 선생님 보란 듯이 합격을 했다. 하지만 내가 그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한국엔 IMF가 터졌고 난 취직이 안돼서 2년간 취업준비생으로 지내야 했다. 안 그래도 취직 안 되는 과인데 IMF까지 터졌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요즘은 졸업하고 한 일이년 취업 준비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동기들은 다 취직했는데 혼자 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마치 시작도 못해보고 낙오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다가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서 소방관이 되고 보니 그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해 준비된 운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만 더 새겨들었더라면 이렇게 인생을 돌아 돌아 오진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없진 않다.


    그 이후에도 난 많은 스승을 만났다. 대학교에서, 소방서에서, 사회에서. 그들은 때로는 내 선배이기도 했고, 동료이기도 했고, 후배이기도 했다.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계속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깨뜨리는 일이다. 나의 모자람을 깨닫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수많은 나의 스승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대한민국의 소방관이자 세 아이의 아빠이고 가장이라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까? 나는 그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이 자리에 올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스승의 날인 오늘도 나는 부디 어리석은 고 3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내 주위에 있는 스승들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배우기를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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