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생명이다. 부활이다. 탄생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 하곤 하지만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서 봄은 네 축의 한 모서리를 담당하는 계절일 뿐이다. 하지만 봄이 시작되면 유독 사람들의 헌사가 쏟아지는 것은 봄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학교에 다닐 때는 언제 봄이 왔나 싶게 고개를 들면 이미 봄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 교실 창문 밖을 내다보면 이미 와 있었던 봄! 그러다 즐길 사이도 없이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 버렸던 봄!그러면 우리는 떠난 봄을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다가오는 여름에 가슴 설레곤 했었다.
중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계절의 바뀜에도 이력이 날 무렵, 난 언제 봄이 왔다가 가는지를 내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봄이 오는 남도를 찾아가 길을 걷기도 하고 벚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일련의 과정들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봄이 오는 그 순간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벚꽃잎들이 피고 새순이 돋는 그 순간은 정확하게 포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내가 잠든 밤에 봄이 온 것 같아 봄이 올 것 같은 날이면 자지 않고 깨어서 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나뭇가지에 벚꽃이 피는 그 순간을, 새싹이 움트는 그 순간을 꼭 내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고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봄이 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 듯하다. 어느 순간 와 있는 봄을 그저 즐기기에도 봄은 너무 짧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왕 와버린 봄. 그저 즐기자고, 그러다 봄이 가버리면 그저 놓아주자고, 그러다 보면 봄은 또다시 한 바퀴를 돌아 우리 곁에 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봄을 보내고 맞이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철이' 들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렇게 봄이 내 곁에 와 있고 또 조금 있다가 떠날지라도 내년 이맘때 또 나를 찾아와 줄 텐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이 봄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