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12화

by 노이망



12월 2일 월요일. 사표를 쓴 지, 즉, 비서 채용 공고를 올린 지 한 달이 지난 오늘. 드디어 비서 면접을 본다. 나는 미지의 후임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특별히 잘 차려입고 출근했다.


“오. 유진 씨. 어디가?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마 대리가 비서실 앞에서 떽떽거리며 친한 척을 했다. 나는 썩은 미소만 짓고 대꾸하지 않았다.


“대회의실에 면접 준비 좀 해줄래?”


“그걸 제가 왜 해요, 마 대리님이 하셔야죠.”


“아니, 비서 면접이잖아. 네 후임 뽑는 건데 네가 준비해야지!”


마 대리가 깔깔대며 말했다.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만약 이게 장난이라면 짜증 나는 상황이고 진심이라면 더 짜증 나는 상황이다.


“재미있으세요?”


“아니,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겠네. 안 바쁘면 나 대회의실에 면접 준비하는 것 좀 도와줘.”


마 대리를 따라 탕비실에 들어갔다. 마 대리는 지나치게 많은 물병과 컵을 꺼내어 쟁반 위에 빽빽하게 담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마 대리에게 물었다.


“아니, 네 후임 뽑는데 면접관 8명이 들어간단다! 회장님, 사장님, 임원 6명.”


“그래요?”


“아니, 살다 살다 이 회사에서 면접 보는데 면접관이 8명 들어가는 건 또 처음 보네!”


“면접 보러 몇 명이 오는데요?”


“스무 명. 아니, 대기업 비서 뽑는 줄! 이력서 보니까 내 기가 다 죽더라. 아니, 이런 애들이 우리 회사에 왜 지원하는지 이해가 안 돼! 대기업 같은 데나 지원하지. 우리 입지 좁아지게. 그렇지 않아, 유진 씨? 어떤 애는 서울대 법대 졸업, 어떤 애는 유명잡지사에서 6개월 동안 일했더라. 학교는 지방대인데 토익이 만점이더라고.”


아래층에 있는 대회의실에 내려가는 동안 면접자들의 정보를 구구절절 나열하는 마 대리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생각했다. 이 면접은 사장이 나를 의식해 일부러 과하게 힘을 줘서 준비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불쾌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고의적인 규모의 면접이었다.


“아니, 그리고 어떤 애는 세상에, 대기업에 1년 넘게 다니고 있는 애인 거 있지? 미친 거 아니야? 그런 애가 신입으로 여기에 왜 지원을 한 건지. 쯧쯧. 애들이 어려서 그런가.”


불현듯 입사 첫날 인사총무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고로 인사총무팀원은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그 말이. 우리 마 대리 주둥이는 더럽게 가볍군.

면접시간 30분 전부터 면접자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작은 회의실에 대기하게 했다.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정장, 단정한 쪽 머리, 깔끔한 화장, 심플한 구두, 착해 보이는 미소, 노력이 묻어나는 당당함. 이제 막 사회생활에 발 들인 그들의 앳되고 어여쁜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총 18명의 면접자가 시간 안에 도착했고, 2명은 오지 않았다. 면접은 다섯 명씩 네 번에 걸쳐 오전 내내 진행될 예정이었다. 마대리는 다섯 명의 면접자를 대회의실로 안내했다.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10분이 지나서야 첫 번째 면접이 시작되었다. 마 대리는 비어있는 김 과장 자리에 앉았다.


“어때? 마음에 드는 애 있어?”


“제 마음에 들어서 뭐해요. 자세히 보지도 않았어요.”


“아니, 그 머리 풀고 온 애 있잖아. 난 걔 별로던데. 꼭 유진 씨 처음면접 보러 왔을 때 같더라.”


마 대리는 또 아무 말이나 하며 깔깔 웃었다.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왼쪽 관자놀이만 문질문질 거렸다. 두통이 오려나.




점심시간 중반쯤 되어서야 모든 면접이 끝났다. 면접비를 나눠줘야 하는 것 때문에 하마터면 나는 점심을 거를뻔했다.


“유진 씨. 도와줘서 고마워. 답례로 내가 햄버거 살게.”


마 대리와 함께 스타벅스 옆에 있는 버거킹에 갔다. 햄버거를 한입 먹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후임 결정되면 언제부터 출근해요?”


“다음 주 화요일쯤 출근시킬까 싶은데?”


입맛이 딱 떨어졌다. 한입 먹은 햄버거를 내려놓고 마 대리에게 말했다.


“대리님. 저 올해 못 쓴 연차 16일이고,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마지막날까지 쓰는 거 알고 계시죠?”


“응. 결재 올린 거 봤지. 본부장님도 말씀하셨고.”

“인수인계는 다음 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딱 4일만 해주면 되나 보죠?”


“아니, 연차 쓰고 해외 가니? 그런 거 아니면 가끔 와서 봐주면 되는 거지, 뭐.”


“그럴 것 같음 제가 연차는 왜 쓰나요? 애초부터 제가 회사에 두 달이란 여유를 드렸잖아요. 오늘에서야 면접 보는 것도 솔직히 짜증 나는데, 출근도 다음 주에나 시킨다니까 황당하기 짝이 없네요. 결국, 제 연차까지 반납하길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니, 생각해 봐. 면접 합격하마자 바로 출근하라 그러면 얼마나 거부감 들고 당황스럽겠어?”


“제가 지금 더 거부감 들고 당황스럽거든요?”


“아니, 왜 나한테 그래?”


“이럴 줄 알았음 그냥 11월까지만 근무할 걸 그랬네요. 천천히 드시고 올라오세요. 전 입맛이 없어서 먼저 올라갈게요.”


나는 먹던 햄버거 세트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무실에 올라왔다. 자리에 앉아 몇 번 심호흡 한 뒤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 대리가 평소보다 더 요란하게 쿵쿵 걸으면서 보란 듯 내 앞을 지나갔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후 다섯 시쯤. 마 대리가 비서실 앞에 다소 쌀쌀맞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네가 원하는 대로 빨리 출근하기로 했어. 이번 주부터. 인수인계 서술형으로 자세히 작성해서 나한테 제출해!”


기가 막혀서 그녀를 빤히 보았다. 도대체 인수인계서를 왜 본인에게 제출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 대리와 보직변경을 할 당시 그녀로부터 A4 용지 한 장짜리의 허접하기 짝이 없는 인수인계서를 받았다. 그 한 장으로 얼마나 고생을 하며 비서일을 익혔는데, 뭐? 서술형으로 자세히? 그리고 누구한테 제출하라

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녀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자리로 홱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간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녀로부터 경영지원본부장과 인사총무팀장을 참조로 넣은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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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 유진.

참조 : 인사총무팀장, 경영지원본부장.

발신 : 마 대리.

제목 : 비서 인수인계에 관한 건.


내용 :

1. 유진 씨 후임자가 이번 주 목요일 처음 출근합니다.

2. 유진 씨는 첨부양식 참조하여 인수인계서 작성해서 내일인 수요일 2시까지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제출하는 인수인계서는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신입사원 교육 및 인수인계는 아래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 아래 -

5일(목) : 오전 – 회사소개, 오후 – 비서업무 소개

6일(금) : 각 공장 방문하여 공장 소개 및 인사

9일(월)부터 13(금)까지 : 비서 업무 인수인계

16일 월요일부터 말일까지 : 유진 씨 연차, 신입 비서 업무처리 능력에 따라 유진 씨와 일정 조절 예정.

5. 기타 문의 사항 있으면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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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년.

나는 이 기가 찬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 때마다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토를 달아 회신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나만큼이나 불쌍할 신입 비서를 생각하며 자세히 서술해 프린트해 두었던 인수인계서를 모조리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그녀가 메일에 첨부한 인수인계서 양식은 열어보지도 않았다. 본인도 쓰지 않았던 양식을 도대체 나더러 왜 쓰라는 건지.


평소에 마 대리가 인간적으로나마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회사는 밉지만 마 대리의 얼굴을 봐서라도 좋은 마음으로 적어줬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나 역시 철두철미한 인수인계서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받은 게 있어서라도 똑같이 해주었겠지. 그런데 이건 뭐, 하기 싫은 일 나한테 떠넘긴 것도 모자라 인수인계도 개차반으로 해준, 그동안 나에게 자기 기분대로 대하고 인신공격과 모욕적인 발언들을 취미로 일삼았던 사람이 이런 메일을 보내니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일 오후 두 시가 되기를 이를 갈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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