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

13화

by 노이망



마 대리와의 결전을 앞두고 점심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마 대리는 종일 나를 모른척했고, 나도 그녀를 무시했다. 내 머릿속엔 마 대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비서실에 돌아가 채용사이트를 열어 몇 군데에 이력서를 더 넣었다. 회장과 사장은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에 들어왔고, 그들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커피 두 잔을 타서 회장과 사장에게 갖다 주고 돌아오니 마 대리가 내 자리 앞에 서 있었다. 쟁반을 탕비실에 놓아두고 그녀를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유진 씨. 내가 안 보여?”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참아왔던 분노가 정수리를 뚫고 폭발했다.


“보인다.”


“뭐?”


“보인다고요.”


마 대리는 혀로 아랫니를 훑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너 인수인계서 제출은 왜 안 해?”


“싫으니까요.”


“아니, 이해가 안 되네. 도대체 지금 네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인수인계서 쓰라고 한 게 그렇게 기분이 나빠?”


“대리님이 저랑 보직 이동할 때 주셨던 인수인계서, 어제 메일로 보내신 양식으로 다시 주시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


“아니, 다른 사람들은 군말 없이 다 그 양식으로 내는데, 왜 너만 유별나게 구는 건데?”


“대리님 참 한결같이 지긋지긋한 분이세요.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러겠어요?”


“탕비실에서 얘기 좀 하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마 대리를 따라 탕비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전자레인지 앞에 섰고, 나는 그런 그녀를 마주 보고 섰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개기는 거야?”


“있잖아요. 저는요. 마 대리님이 너무, 너어어무 싫어요. 싫어서 미칠 것 같아요. 마 대리님만큼 못된 사람 살면서 처음 봐요. 이런 말 많이 들으셨겠지만.”


내가 이유를 말하지 않고 다짜고짜 너 싫어 공격을 날리자 마 대리는 약간 당황하는 듯했다.


“내가?”


“여기 마 대리님 말고 또 누가 있어요? 대체 왜 그러세요? 매사 제게 왜 이렇게 못되게 구시는 거예요? 전 그것부터 설명을 들어야겠어요.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어.”


마 대리의 기가 어쩐지 살짝 죽어 보였다. 뭐지?


“발뺌하시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얘기를 해봐.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고작 인수인계서 작성하는 것 가지고 이 난리가 나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서.”


나는 마 대리가 일부러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하나하나 다 말해요? 저한테 늘 옷 지적하시죠? 한두 번 지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에 여러 번씩 저 따라다니면서 멀쩡한 옷으로 트집을 잡으시죠. 얼마 전엔 제 얼굴 지적도 하셨잖아요. 수술하라고. 누가 누굴 지적하는 거예요? 제가 마 대리님의 얼굴이나 덩치를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선 지적질 안 하는 것처럼 마 대리님도 그렇게 하셨어야죠. 그게 사람 간 최소한의 예의니까요. 앞뒤 안 맞는 논리로 훈계 질 하는 것도 어디 한두 번인가요? 마 대리님은 늘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시면서 어쩌다 제가 한번 슬리퍼 신으면 꼴 보기 싫다고 신경질 내셨죠. 기분 좋으면 저한테 와서 깔깔거리고, 깔깔거리는 와중에서도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 하고 아무 말이나 내뱉잖아요. 본인 기분 나쁘면 아는 척도 안 하고, 인사 다 무시하고, 유치하게 구는 거 웃기지도 않아요. 여기가 초등학교예요? 저한테 인격 모독은 수시로 하시면서 어디 가서 누구한테 싫은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쁘니 어쩌니 불평 쏟아내시는 거, 저야말로 꼴 보기 싫어요. 본인이 어떤 행실을 하고 다니는지 진정 모르시겠어요? 또, 마 대리님은 저한테 인수인계 어떻게 해주셨나요? 인수인계서라고는 고작 종이 쪼가리 한 장 던져주셨으면서 저는 완벽한 인수인계서를 남겨주기 바라는 거 너무 양심 없지 않아요? 게다가 그 인수인계서는 왜 마 대리님한테 제출하라고 하시는 건데요? 마 대리님이 지금 비서라도 되세요? 회사가 작았을 때 겨우 2년 비서 한 걸로 유세 떠는 거예요? 뭘 어떻게 했는지 얘기해 보라고요? 저 여기서 24시간 동안 마 대리님 고막 찢어질 때까지 떠들 수 있어요. 누군 바보라서 마 대리님 헛소리마다 똑같이 대꾸 안 한 줄 아세요?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있어서 참은 거거든요.”


내가 하나씩 짚어가자 마 대리는 점점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 대리와 고성이 오갈 거라고 생각한 내게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때 탕비실 문이 활짝 열려서 나와 마 대리는 깜짝 놀랐다. 김 과장이었다.


“아이고. 심각한 얘기 중이었네. 자리가 비어있길래.”


“저 찾으시면 말해주세요.”


“그래, 그래.”


탕비실 문이 다시 닫힌 뒤에도 마 대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리 길진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해. 유진 씨.”


잉?


“해명을 해보자면, 나는 원래 말을 좀 툭툭 내뱉는 성격이야. 목소리도 알다시피 떽떽거리는 편이라 아마 유진 씨가 더 기분 나쁘게 느꼈을 것 같아. 친해지려고 했던 방식이 좀 짓궂었나 봐. 유진 씨를 싫어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야. 메일로 보낸 인수인계서는 퇴사자들한테 받는 양식이야. 그냥 보직 이동만 할 경우에는 그 양식을 안 쓰기 때문에 이 부분은 오해한 것 같아. 인수인계서를 나한테 달라고 한 것도 유진 씨 퇴사했는데 업무 때문에 연락 가면 서로 껄끄러우니까 비서 했었던 나라도 숙지해 두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그런 거야. 유진 씨가 그동안 나 때문에 쌓인 게 많은 거 보니 그 메일보고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순순한 사과에 오히려 마음이 복잡했다. 정말 본인의 잘못을 몰랐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예의와 지켜야 할 선 같은 것들은 상식이 아닌가? 이런 상식적인 도덕을 몰랐다는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차라리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고 하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아요. 나쁜 감정도 없었고, 원래 성격이 그런 거고,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전혀 몰랐다고 하시니 저는 되려 더 당황스럽네요. 솔직히 믿어지지도 않고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 성격 맞춰드린다고.”


“말을 해주지 그랬어.”


“제가 대리님께 무슨 말을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생각을 해보세요. 마 대리님은 저보다 선배시죠. 나이도 더 많으시죠. 저는 윗사람이 제게 나쁘게 한다고 해서 똑같이 갚아주지 않아요. 마 대리님도 그렇지 않나요? 윗사람이 싫은 소리 하면 그대로 갚으시나요? 뭐, 가끔 그러시는 거 알지만 대부분은 참으시잖아요. 참고 뒤에서 욕하시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 대리님은 제 윗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이왕 참은 거 나갈 때까지 조금 더 참으려고 했었죠. 인수인계 메일 받기 전 까진요.”


마 대리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마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뭔가 변명을 하려던 것 같았지만, 결국 이렇게 말했다.


“내 성격을 좀 고쳐야겠어. 혹시 더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얘기해 줘. 내가 꼭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아. 사과한다고 응어리가 다 풀리진 않겠지만, 다시 한번 미안해.”


“인수인계서는 보내주신 양식으로 오늘 5시까지 회신할게요. 오해한 건 저도 미안해요.”


속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양가감정을 털어버리기 위해 얼른 탕비실에서 나와버렸다. 내가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는 동안 마 대리는 오래도록 탕비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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