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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Feb 14. 2022

'다움'은 말이 아니라 경험이 만든다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을 읽고

    작년 하반기에는 두 가지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한 가지는 리더 역할을 맡으면서 관심을 갖게 된 리더십이나 조직문화 같은 '회사에서의 나'에게 필요한 주제였다. 다른 한 가지는 나만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가려는 내가 늘 관심을 갖고 있는 브랜딩이었다. 오늘 소개할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 두 가지 관심사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의 책 표지에는 '브랜딩스러운 조직문화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조직 내에서 만들어지고 흐르는 조직문화가 외부를 향할 것 같은 개념인 브랜딩과 어떻게 연결될까 궁금했다.

    판형도 작고 두께도 굵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완독에 시간이 걸렸다. 잘 읽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중간에 메모하거나 고민해볼 만한 내용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문장을 직접 기록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휴대폰으로 페이지를 찍기 시작한 게 그 증거다.


    저자는 자신을 인터널 브랜딩(Internal Branding) 담당자라고 말한다. 그는 많은 회사에서 통용되는 직무 정의로 말하자면 HR(Human Resource) 담당자, 즉 '인사팀' 구성원이다. 책에서 우리가 흔히 써왔던 브랜딩의 정의를 소개하며 이회사 바깥, 즉 외부 고객을 향하는 External Branding으로 설명한다. 고객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는 브랜딩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저자는 거기에 더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과의 관계, 즉 인터널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직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방법


    저자는 조직 안에서의 자유는 '마음대로의 선택' 아니라 조직 내에서 약속된 범주 안에서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 범주가 바로 '가치'라고 설명한다. 그 가치는 조직의 존재 이유, 즉 목적과 관련이 되어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 내의 다양한 선택과 활동들이 이루어질 때, 가치는 그 선택과 활동의 범주가 되어준다. 목적을 향한 주행 과정에서 가드레일이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치는 조직 안에서 잘 동작해야 하고 그를 통해 조직 밖에까지 이 가치가 잘 전달될 수 있다. 저자는 그 가치가 전해질 때 사람들이 그 조직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하며, 이것이 인터널 브랜딩의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회사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인터널, 즉 내부뿐만 아니라 그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도 스며들어있다. 때로 그 가치 자체가 제품 선택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국 좋은 인터널 브랜딩은 좋은 익스터널 브랜딩으로 이어질 것이다.

    브랜딩에 대한 책이나 글을 읽으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정체성(Identity)'이다. 저자는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고유한 '다름', '독특함'을 만드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독특함을 만드는 것이 앞서 설명했던 '가치'다. 이 장에서 '-다움'과 '-스럽다'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해 비교하고 설명한다. 두 가지의 차이에 대해 저자가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비슷하면서 미묘하게 다른 느낌에 대해 적절한 답을 하기 어려웠다. 이 책, 이 장에서 명확한 답을 얻었다. '스러움'은 비슷한 것이고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다. 반면 '다움'은 그 대상이 기대 수준과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는 의미로 오리지널의 특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린아이는 '어른스러울' 수 있지만 '어른 다울' 수 없다. 우리 회사에서는 '우리 다움'을 종종 이야기한다. 자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모든 선택과 활동에 아주 구체적인 규칙은 없다. 그럴 때 '우리 다움'이 쓰인다. 우리답게 행동해달라는 문장은 굉장히 모호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가치와 정체성이 명확한 조직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주문이다. 

    여러 개인들이 모여있는 조직에서 과연 그 가치와 정체성을 어떻게 내재화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일관성 있는 경험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떤 믿음과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런 믿음이 생긴 후에는 같은 상황에서 그 믿음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조직의 가치가 일관성 있게 일련의 경험에서 같은 믿음을 만들어주고 계속 반복된다면 구성원들은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 조직이 내세우는 가치는 그 문장만으로 구성원들에게 내재화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경험에서 그 가치에 따른 믿음을 얻을 수 없다면 실제로 구성원들의 선택과 활동의 범주가 되어줄 수 없다. 이 부분은 저자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기도 한데, [경험-믿음-행동-결과]의 공식은 마지막 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시그널(Signal)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다음에 내가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가 되는 셈이다. 결국 조직에 가치를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경험, 즉 시그널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 맞춤법을 지적받으면 그 경험이 시그널이 되어 그다음에는 더 주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조직에서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는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고 이 경험이 다음 행동을 바꾸는 키가 되는 셈이다. 좋은 인터널 브랜딩을 위해서는 조직 안의 경험들이 우리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회사에서 '말하는 가치'와 실제로 회사 내의 경험으로 '느끼는 가치'가 다를 때 구성원들은 회사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보여주고 싶은 정체성과 구성원과의 관계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5대 핵심가치, 행동강령 따위를 주입식으로 설명하고 심지어 시험을 통해 검사(!)까지 하는 시도들이 좋은 인터널 브랜딩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경험'에 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


    인터널 브랜딩에서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왠지 딱딱한 업무적 전문성보다는 동기부여나 문화처럼 조금 말랑말랑한 것이 브랜딩과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직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조직의 활동, 즉 문제 해결의 과정에 전문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앞서 조직에서 가치의 의미를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선택과 활동들의 범주, 즉 경계라고 설명했다. 결국 좋은 인터널 브랜딩은 조직의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이고, 전문성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성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저자도 본인이 생각하는 전문가의 정의를 본문에서 소개한다.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함께 소개하는 개념이 '업무한계 인식'과 '업무에 대한 예리함'이다. 이 중 업무에 대한 예리함은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업무한계 인식은 이와 반대로 업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 수 없는 이유나 환경에 대한 인식으로 소개된다. 예리함이 증가할수록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데, 업무한계 인식이 증가한다는 것은 '어차피 안 될' 한계를 더 많이 알아간다는 의미다. 두 가지는 각각 긍정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조직 적응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증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개념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조직 구성원들의 전문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업무에 대한 예리함과 한계에 대한 인식은 어떤 관계를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조직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매우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함께 증가하는 경우라면 업무를 처리하는 능숙도나 효율은 좋지만 한계도 크게 느끼기 때문에 자괴감이나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가 크다. 저자는 부정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업무에 대한 예리함은 크지만 업무의 한계는 작게 느끼는 경우다. 이런 구성원들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여주며 한계를 크게 느끼지 않고 도전하며 성공해낸다. 이는 구성원이 뛰어난 업무 능력과 한계 극복의 의지를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환경도 큰 영향을 끼친다. 업무의 한계나 문제 상황을 크게 느끼지 않도록 하거나 그런 장애물을 리더가 잘 해결해주고 있다면 이런 관계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두 가지 관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경험만큼 다양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이 진행한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의 의견을 모아보며 발견한 놀라운 결과를 책에서 소개한다. 두 가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많았다고 한다.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예리함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구성원들과 그런 조직에는 업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리더의 역할과 유효한 피드백이 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정체성과 전문성의 Key, 피드백 


    저자는 책의 첫 부분에서 조직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경험-믿음-행동-결과]를 강조했다.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구성원들의 경험을 통해 '믿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믿음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좋은 경험, 즉 시그널을 만들어가는 것을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더 적극적인 행위가 있다. 바로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구성원의 전문성을 갖춰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강조되었다.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구성원의 성장에도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셈이다.

    피드백은 일정 시기가 아니라 항상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1년에 한두 번 점검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피드백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의미 있는 피드백을 위해 조직 내 '심리적 안정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슷한 의미에 대해 '심리적 안전감' 또는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용어가 함께 쓰인다. 많은 조직문화 책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사용하고 있고, 나 역시 그 용어를 선호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된 단어를 그대로 인용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조직이라면 익명이 아닌 공개 피드백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익명 피드백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피드백을 작성하게 된다.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그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믿음은 흐릿해진다. 그런 피드백을 전달받는다면 내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으며,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해도 상대를 모르니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맥락이 흐려진 피드백으로 본인의 행동이나 선택을 바꾸기는 더욱 어렵다. 피드백을 제공했는데 상대의 행동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구성원이나 조직의 가치에 대한 믿음은 더 낮아진다.

    몇 년 전부터 수직적인 평가제도의 대안으로 동료평가, 다면평가 등이 자주 언급되었다. 대기업에서도 이런 새로운 평가 방식이 시도되면서 작성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지인들도 많아졌다. 인기투표처럼 진행되거나 익명성의 뒤에 숨은 저격이 되어버렸다는 사례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평가제도가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조직의 가치나 믿음이 공유되기 전에 성급하게 '좋은 제도'만을 도입하려고 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 의심하거나 내가 돋보이기 위해 상대가 덜 빛나야 하는 구조가 여전하다면 과연 의미 있는 피드백이 동작할 수 있을까.

    우리 회사에서는 피드백을 중요하게 여기고, 필요한 경우 적시에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물론 정기 피드백도 있다. 함께 협업하는 구성원들에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 하반기 피드백 시기에는 의미 있는 피드백을 작성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피드백은 작성자를 공개해서 전달한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물론이고 상대의 성장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점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 있다. 일방적인 평가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진솔한 조언이기 때문에 정기 피드백 결과를 오픈하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줄리 주오는 <팀장의 탄생>에서 좋은 피드백을 상대를 위한 선물에 비유했다. 나에 대한, 나를 위한 피드백 꾸러미를 몇 차례 받아보면서 그 말이 더욱 와닿았다.




말이 아니라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


    저자가 강조하는 인터널 브랜딩, 구성원들과 조직의 가치와 믿음을 잘 공유하기 위한 과정은 아주 간단해 보인다. 물론 간단하다고 해서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교육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의도한 조직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지, 구성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행동하지 않는지 의아하다면 저자의 조언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더 잘 설명해준다. 조직에 대해 구성원들이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공표하는 캐치프레이즈나 말이 아니라 조직에서 하는 경험들이 우리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보여주고 구성원들에게 믿음을 만들어낸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적응하면서 좋은 인상을 받고 점점 그 인상이 강해진 것도 일련의 일관성 있고 반복된 경험 덕분이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의미는 좋은데 과연 진짜일까?'라는 의구심이 금방 사라진 건 경험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하면서 내 안에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때로 피드백을 통해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직접 다른 구성원의 목소리로 듣기도 했다. 회사보다 작지만 여러 구성원들이 있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이 책에서 배운 것도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정말 많이 닮았다. 우리 조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믿을 수 있도록 좋은 경험을 주는 것. 경험으로 학습한 행동의 범주, 즉 우리의 가치 안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물, 즉 유의미한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 것.

    내가 경험하면서 느낀 '우리 다움'을 다시 우리 안의 작은 조직에서 또 다른 '우리 다움'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료해졌다. 내가 한 경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그래서, 인터널 브랜딩을 성공적으로 형성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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