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오지랖도 있나?

양보 실종 사회

by 느리게걷는여자

2017. 10. 24 내 생일


흔히 남의 일에 대해 참견하고 간섭하는 일을 빗대어 '오지랖'이라고 한다. 오지랖을 떨 때마다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막상 그 본 뜻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지칭하는 명사로, 오지랖이 넓으면 다른 자락을 많이 덮어버릴 수 있기에 남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을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로 사용된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지랖'이라는 의미는 '간섭과 무례'를 함의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과연 모든 오지랖은 다 나쁜 걸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건 다 무례하고 몰상식한 일일까?

운전면허증을 어렵게 따놓고 장롱에 숨겨둔 죄로 시내에 나갈 때마다 마을버스를 자주 이용하곤 한다. 내가 고등학교 통학을 하던 15년 전만 해도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양보를 하는 건 '상식'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양보가 없다. 허리가 구부정하여 서있기도 힘든 노인, 일곱 살 이하의 어린이, 혹은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에 대해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외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약자를 외면하고 있는 무심한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불끈 열불이 났다. 특히 경로석(敬老席)에 버젓이 앉아 엉거주춤하고 있는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젊은이를 보면, "여긴 경로석이니까 자리양보 해드려요."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괜한 오지랖을 부리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망신스러울 것 같아 주저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일을 저질러버렸다. 칠팔십 되어 보이는 할머님이 버스에 타셨는데 서있기도 힘겨워 보이셨다. 자리를 찾아 애타게 두리번거리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 함께 두리번거리던 중 경로석(敬老席)에 앉아 있는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핑크색 잠바를 입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그 학생에게 여긴 경로석이며 할머님이 힘들어하시니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게 어떻겠냐고 용기 내어 이야기 했다. 무뚜뚝한 표정이었지만 아무 말 없이 바로 일어나준 그 여학생이 내심 고마웠다.

할머님과 여학생, 모두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행동은 명백히 오지랖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나를 도덕적 감상에 젖은 찌질이 오지라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그 여학생 또한 속으로는 쌍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나의 권리가 중요해진 세상이라고 해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道理는 비슷하며 약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미덕美德이라고 믿고 있는 게 시대착오적인 걸까?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나의 오지랖으로 선착순으로 의자에 앉아서 갈 권리를 박탈당한 여학생과, 경로석에 앉아서 갈 권리를 획득한 할머님이 차창 밖의 풍경과 교차되어 나타났다.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그 여학생은 경로석에 앉을 때마다 앞에 노인이 서 계시다면 이전처럼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권리에 대한 불편한 자각. 정말 그렇다면 나는 내 오지랖이 어느 정도는 착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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