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사랑하고 싶어진 가을을 만나다
To. 배롱나무꽃
마침내 빨강 꽃을 피웠더구나.
황홀 그 자체였어.
내가 제일 좋아한 매혹적인 색깔로 다가온 너의 향기.
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너의 도도한 매력이 부러워.
뭐랄까, 요란스럽지 않게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거 같았어.
고상하고 성숙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마음 한 편에선 나도 고상해지고 싶더라고.
마침 나에게도 혼자만의 방이 생겼어.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 말고 오롯이 나를 위한 방 말이야.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듯했어.
방을 꾸미고 정리하는 내내 떠나지 않은 미소를 보았어.
그 미소 속에 너를 닮은 빨강 배롱나무꽃 사진이 들어 있었던 거야.
꺼내와 책상 오른쪽에 올려놓고 글을 쓸 때마다 너에게로 가곤 해.
거짓말처럼 생각이 풍성해지고 놀라운 집중력도 생겨.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그런 시간을 즐기곤 하지.
나도 빨강 배롱나무꽃처럼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
참 생각해 보니 인생이 별 거 없더라.
살아가는 과정이 누구나 비슷하단 걸 알게 됐거든.
돈이 많은 사람이나 좀 부족한 사람이나 밥 세끼 먹는 거 똑같잖아.
물론 질의 차이는 있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중심에 있는 명품 아파트에 살아 보는 게 소망이었어.
좀 유치한 꿈을 꾸면서 갈수록 멀어져 간 현실을 원망하고 불평하던 내가 미치도록 싫었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삶이 편해지는 걸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달은 거 같아.
비현실적인 꿈들과 이별하고 자연의 바람을 만난 거야.
글이 써지지 않을 때 풀과의 전쟁을 하면서도 노동의 대가로 얻어진 기쁨이 커 너 있는 작은 정원으로 가는 거 같아.
풀이 뽑힌 흔적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 참 좋더라.
단순한 진리에 감동하던 나.
더는 과욕 부리지 않겠다고 확성기를 통해 외치고 싶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너의 꽃말은 부귀더라고.
하지만 어쩌겠어, 너로 인해 나의 삶이 지금보다 부유해진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기쁨으로 다가와 나의 친구가 된 빨강 배롱나무꽃잎들.
오래오래 나의 생각 속에 머물러 주길 바라.
고마워 빨강 배롱나무꽃.
From. 이엔에프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