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엔에프제이 Nov 23. 2023

가짜 도시농부

포항 여행 중 도시농부의 길을 계약하다

나는 서울 시민이다. 

서울이 좋다. 

서울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불현듯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 나였지만 의욕이 앞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서울에서 정원을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을 떠나긴 싫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삼십 분 이내의 거리라면 딱 좋을 거 같았다. 

그날 이후 조건에 맞는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매매를 할 것처럼 나는 마음이 들떴다.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쉽게 떠오르지도 물건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웃긴 건 수중에 돈은 없고 마음은 간절했다.


몇 년 후, 뭐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마침내 내게로 왔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의왕시에 있는 조그만 땅. 

지인은 포항 여행 중에 있던 내게 매입의사를 물었다.

나는 땅을 보지도 않고 지인이 대충 알려주던 주변 위치를 그대로 믿은 상태에서 무조건 매매하겠다고 했다. 성급한 마음이 팔랑귀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러곤 다른 말을 듣지 못하게 귀를 닫아버렸다. 

예쁜 정원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나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계약금 일부를 송금했다. 

그렇게 구두상 계약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땅이 있던 주변을 둘러봤다. 

맙소사,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는 땅이었다. 

앞이 깜깜했다. 

후회한들 답이 없었다. 

신중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바보 멍청이라고 자책한들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았다. 

속았다는 생각에 땅을 밟기도 그 땅을 보기도 싫었다. 

잊고 싶어 그냥 방치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국에 불현듯 땅이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오랜만에 그 땅을 밟았다. 

밉지만 정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작은 비닐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하우스 안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긴 테이블을 놓았다. 

허름하긴 해도 커피 향이 채워지자 감성이 충만한 카페 같았다. 

상했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시농부가 되었다. 

빨간 장화를 신고 땅을 일궈 조그만 텃밭과 정원 만들기에 집중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견딜만했다. 

곧 펼쳐질 아름다운 정원의 형상이 나의 심리상태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원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겁 없이 덤볐다. 

그렇다고 한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테마를 정한 꽃밭에 꽃들을 심었다.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홍매화를 비롯하여 주변의 꽃들이 피어날 때 거짓말처럼 벌과 나비가 날아들었다. 

노란 나비, 흰나비, 호랑나비 그리고 이름도 모른 나비들까지. 

황홀 그 자체였다.


흙을 밟으며 풀을 뽑을 때 모든 스트레스가 함께 뽑혀 간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던 날, 나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나의 작은 정원은 지인들의 쉼터, 힐링의 장소가 되었다. 

누구라도 왔다가 돌아갈 땐 텃밭에서 딴 먹거리를 챙겨주었다. 

지인들의 발걸음 흔적이 쌓여갈수록 불안했던 나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그렇게 비닐하우스 안에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나와 지인들의 누적된 스트레스를 풀어주었다.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할 순 없고 정원을 갖고 싶었으니 조금 불편해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후 세시쯤이면 황금빛 햇살이 비닐하우스 창문 사이로 들어와 도시농부인 나와 놀자고 한다.




이전 02화 창가에 서 있는 청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