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통보는 이별통보, 너무나 떨리는 일.
동기들과 팀원들에게는 미리 퇴사한다고 이야기해 두었으나, 팀장님과 부서장님께 말씀드리는 일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를 나무라면 어떡하지. 원망하면 어떡하지. 아니, 나를 잡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인수인계서를 당장 써내고 나가라고 으름장이라도 놓으시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이 들었다.
오늘은 기필코 말씀드리겠다고 결심하고서는, 팀장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하루 미루고, 팀장님이 바빠 보이니 하루 미룬다. 주변에 듣는 사람이 많으니 또 하루 미뤘다.
그렇게 정처 없이 시간이 가던 어느 날, 괜히 친구에게 말했다.
"내일은 출근하자마자 말할까 하는데, 이제말하나 저제말하나 똑같겠지..?"
그러자 퇴사를 경험해 본 친구 왈,
"직접 퇴사통보하기 쉽지 않지..ㅠㅠ 근데 말하기 전까진 정말 어려운데, 말하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그래도 괜찮았어. 나는 퇴사한다고 하면 진짜 대놓고 괴롭힐 줄 알았거든? 나랑 같이 지냈던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했더라... 엄청 실망하고 섭섭해하시고 괴롭히고 화낼까 혼자 상상했는데, 말씀드렸더니 응원해 주셔서 눈물 났잖아ㅋㅋㅋ"
정말이었다. 너무 상상이 깊어진 탓에 사람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한 나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다음 날, 팀장님께 곧장 말씀드릴 수 있었고, 팀장님은 씩 웃으시며 "다른 좋은 곳 가나요?" 하며 물으셨다. 나는 "아뇨.. 그냥 다른 일.. 해보고 싶어서요.."하고 조목조목 설명드렸다. 분명 당황하셨을 팀장님이지만 프로답게, 그저 응원한다고 하셨다. 자기의 옛날얘기를 괜히 주절주절하시는 팀장님을 보며 당황하시는 심경이 엿보일 뿐이었다.
머지않아 부서장님께도 말씀드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괜히 부산스럽게 서랍 몇 개를 열었다 닫았다, 괜히 노트를 부스럭부스럭거리며 벌써부터 당황해하셨다. "퇴사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자, 이유를 물으시곤, "응.. 그렇게 정했다고 하니.. 알겠어요. 어디 가서 든 잘하겠지."하고 이만 나를 보내주셨다.
별 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잡지도 않으시니 괜히 섭섭하기도 했으나(사람의 마음이란ㅋㅋ), 걱정한 것과 달리 정말 쉽게 알겠다는 대답을 해주시니 마음의 체기가 쑤욱 내려갔다.
이제야 정말 퇴사가 확정된 기분이 들었다. '나 이 정도로 힘들었어. 나 이 회사 아니어도 잘 살 자신 있어.' 나의 선택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줬다는 기분 그 자체에 통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내 퇴사는 오피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