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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카페에 갔다. "저 퇴사할까요?"

답은 내가 정해줄 게, 너는 대답만 해.

by 고정문

한창 퇴사를 고민하던 어느 주말, 사주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예전 몇 차례의 사주풀이 결과 내가 '프리랜서 기질'이 있고, '사주가 청하다'라는 평을 들었던 터, 답답한 마음에 "마! 퇴사해라!"라는 시원한 답으로 속을 뻥 뚫고 싶었다. 그리하야 나름 울산에서 용하고 후기 좋은 사주카페를 엄선하여 방문했다.


앞서 방문한 손님에게 "언니는 사업하라니까! 가게를 차리라니까!!" 하며 언성을 높이는 걸 보니, 나름 철학이 있고 통찰이 있는 선생님이구나 싶어 믿음이 갔다.


내 차례가 되어 물었다.

"저 지금 이 일을 계속해도 될지 한 번 봐주세요."


사주선생님은 몇 가지 정보를 들어보더니, 왜 그 좋은 공기업을 그만두려고 하냐며, 계속 다니라고 했다.

"와, 와 관둘라고 하노? 공기업 요즘 잘 나간다 아이가? 월급도 잘 주고, 잘리지도 않고. 워라밸도 좋다 아이가?"


"공기업이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만 그런 건지 일이 너무 힘들어요. 열심히 해도 계속 더 힘든 일만 생기고, 보람도 없고. 그렇다고 월급도 별로 쎄지도 않고. 너무 힘들어요."


"니가 힘든 건,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칭찬을 안 해줘서 그렇다. 사람들이 말 안 해줘도 다 알고 있으니까 참고 잘 다니라. 인생에 행복이 별 거 있나, 몇 년까지 얼마 모으기, 집사기, 이렇게 목표 잡아서 하루하루 잘살았다 하고 지내면 그게 행복아이가? 목표가 없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한 기라."


"그럼 제 사주에 돈이 좀 있을까요..? 사업하면 어때요?"


"치아라, 사업해 가 돈은 옆에 친구가 차라리 벌지. 니는 힘든 일 몬한다. 니는 남편복이야. 남편 잘 만나가 호강하면서 살아라. 그매만큼 좋은 기 어디있노? 결혼할라믄 번듯한 직장 있는기 낫다. 욕심내려 놓고 쭉 살면 된다. 그기 좋은 팔자다."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매일매일을 버티듯이 이렇게 살면서, 그저 남편 잘 만나 결혼하고, 차사고, 집 사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내 팔자 최선의 행복인 거라는 건가.. 내 한평생 현모양처의 꿈은 꿔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내 주변의 모든 워킹맘들이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걸 익히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주풀이가 내겐 악담으로 들렸다.


"그럼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요?" 하며 눈물을 줄줄 쏟으니, 놀란 사주선생님이 왜 뭐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있냐고 묻는다. 고민하다 지금은 글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니, "그래, 글 열심히 잘 쓰고 고쳐서 2025년에 딱 내라! 근데 그기 돈이 되나?" 한다.


사주를 보고 돌아오는 길, 괜히 내가 남부러워할 좋은 팔자 지가 꼬려고 하나 싶어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회사 계속 다니라는 말에 눈물이 뚝뚝 날 정도로 내가 이렇게 회사를 싫어했구나 싶어, 퇴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또 생겼다.


결국 지금은 이렇게 퇴사하고 집에서 글 쓰고 있다. 팔자를 꼬는 것이든, 피는 것이든, 어차피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서 사주는 왜 봤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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