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Sep 06. 2021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게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퇴사일기#5] 연애상담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 저는 남동생을 만나기 위해 영등포로 향했습니다. 연애상담이라는 것을 얼마 만에 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만에 풋풋한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생경하면서도 즐거웠습니다.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 남동생을 만나기 위해 영등포로 향했습니다. 연애상담이라는 것을 얼마 만에 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만에 지켜보는 풋풋한 감정선이 참 생경하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회사 사람들과는 연애상담을 할 일이 없었습니다. 8시간의 업무시간에 점심식사 1시간까지 총 9시간 이상을 회사에 머물면서, 하루 중 가장 긴 시간 얼굴 맞대고 생활하지만 회사에서 맺은 인간관계에서는 '선'이 있었습니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순진하게 내뱉은 저의 이야기가 돌고 돌아 다른 팀에서 제 귀로 들려왔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그 후로 회사생활을 하면서 연애상담을 할 일도, 해줄 일도 없는 것이 가장 마음 편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의 연애상담이 더 들떴는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곡이 있을 때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 습관이 언제 생겼냐고 묻는다면 꽤 오래전으로 돌아가야 설명이 됩니다.


 제가 초등학생 고학년일 때 처음 MP3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좋아하는 소시지를 아껴놨다가 가장 마지막에 먹는 아이였습니다. 행복을 마지막에 남겨두는 것이 익숙한 사람. MP3 리스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꼭 그 앞에 덜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했습니다. 모든 것에서 행복을 뒤로 미루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것을 가장 앞에 두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좋아하는 곡을 플레이 리스트 가장 앞쪽에 뒀고, 심지어 그 곡만 반복해서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곡을 듣기 위해 앞에 미리 깔아 둔 곡을 듣지 않고 넘기는 그가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해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계속 잘 만났냐고 물으신다면 'No!!!'입니다. 시작과 달리 끝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살면서 늘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와의 연애 경험은 인생을 통틀어 최악이었습니다. 특히 아주 지저분한 이별이 기억에 남는데 그런 탓에 가끔 꿈만 꿔도 굉장히 괴롭습니다.


 한때 가장 사랑한다 믿었던 사람이 최악의 인연이 되어 기억에 각인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못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별 중에 가장 지저분한 이별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종말에 힘들고 괴로운 감정을 남긴 그가, 그렇다고 저한테 어떤 의미도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그 또한 'No...'입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와 경험은 단편적으로 해석하기에 너무 복잡미묘합니다. 모든 일에 결과론적 해석을 적용시킬 수 없습니다. 그는 최악이었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남긴 것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지난 사람들에 대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 믿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성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사람을 '실패 경험'으로 정리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식의 정리가 조금 아쉽습니다. 경험 상 연애의 최종 목적지(또는 성공 사례)는 결혼이 아니었고, 실패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얻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지금도 좋아하는 곡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그와의 연애 경험을 오롯이 '실패'로만 정리했다면 저는 이 습관을 버리는 게 맞겠지만, 스스로에게 이 습관이 맞는다는 사실을 그 사람과 연애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좋아하는 곡을 듣기 위해 덜 좋아하는 곡을 미리 듣는 방법만 알고 살았겠지요.


 나와 다른 타인을 만나 최선을 다해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경험 자체가 무언가를 남기기도 합니다. 실패라 정리해서 완전히 지울 필요도 없고,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게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연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부모나 친구보다 가까운 유대를 만들어 관계를 지속하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태어나 서른 해를 넘기고 연애와 이별과 결혼을 경험해봤지만서도 정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연애상담을 해주면서도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제게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길을 찾을 겁니다. 아마 제 경험담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치 남을 위하는 마음처럼 들리시겠지만, 사실 사랑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하지만 사랑만큼은 꼭 해보라고 말하겠습니다. 오랜만의 연애상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입니다. 역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장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회사를 나오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져서 요즘 정말 즐겁습니다.






        

이전 04화 현재를 얼마큼 소진해야 적절한 걸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