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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Aug 24. 2021

끊기 힘든 것은 술만이 아니더군요.

[퇴사일기#3] 진정한 백수


 드디어 진정한 백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로서 저는 더 이상 직장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퇴사 전 여름휴가가 껴있었기 때문에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공식적인 퇴사 성립은 생각보다 후련했습니다. 해방감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이 얼마만인지 곰곰이 되짚어봅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정말 많습니다. 우선 면허를 따고 싶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구입한 영어 강의를 학습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시간이 조금 더 난다면 제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도 하나 취득하고 싶군요. 백수는 욕심쟁이입니다.

 이력서를 공개한 후 헤드헌터로부터 종종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헤드헌터는 '운전면허도 없나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꺼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면허가 은근히 기본기인가 봅니다.

 서른 먹도록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것은 제가 엄청 겁이 많은데다가 차를 직접 몰 수 있는 시점에 면허를 따겠다고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자격을 얻는 데에 신중하고 싶었달까요. (쫄보의 변명) 조금 어려워도 1종으로 도전해보겠습니다.

 회사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죽여가면서도 막상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은 없었습니다. 시간을 죽이는 것이 직장생활이었다면, 백수생활은 시간을 채워가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주 우연찮게도 '공식 퇴사일'인 오늘 직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반갑지 않은 상사의 연락이라 귀찮았습니다. 퇴사 전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저를 보며 "그냥 가. 어차피 남아있는 사람이 다 알아서 해결해. 네가 해놓고 간다고 칭찬해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라며 저를 생각해주는 척하던 사람이라 헛웃음이 났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이 회사에 적응한 인물이기에 끝까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사회에서 배운 기본기가 잔존하여 웃으면서(아니 웃는 척하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을 합니다. 전(前) 회사에서의 연락은 언제 끊을 수 있으려나.

 사실 퇴사와 동시에 지우고 싶은 번호가 30개는 있었습니다. 5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저장한 번호가 꽤 많더라고요. 하지만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업계로 다시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혹시나 그들로부터 연락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가 좁은 게 이렇게나 불편한 일입니다. 퇴사했지만 회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결국 또 술이 땡기는군요. 역시 끊기 힘든 것은 술만이 아니었습니다.​

 끊어낸다는 단호함은 저한테 굉장히 어려운 스킬이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 중 시도한 거절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세대'로 평가되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워라밸 그런 거 따진다면서? 애사심 이런 건 하나도 없나 봐. 퇴근 시간에 총알같이 달려나가는 것 보면 참 예의가 없어. 사회생활은 단체 생활인데 본인만 알고 참 이기적이란 말이야.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인데 술 안 마시려는 것 보라고. 수당까지 다 챙겨주는데 야근 안 하려는 것 보면 돈 벌고 싶은 마음이 없나봐. 이러쿵저러쿵.

 떠올리기 싫었던 말들이 순식간에 뇌 주름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상사의 그런 평가가 돌고 돌아 제 귀에 들려오기를 수차례. 거절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단호함은 봄날 눈 녹듯 아스라히 사라지고, 뭉툭한 연필과 같은 대답이 편했습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제가 경험한 사회생활이었습니다.

 처음 이 직장에 왔을 때, 퇴근 시간이 5시인데 꼭 5시 10분에 퇴근하라고 말하던 선배에게 "왜요?"라고 묻지 못했습니다. 설령 물어봤더라도 납득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냥 '그러는 게 맞는 거야'의 논리가 이 사회생활의 타당성이니까요.

 연차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류 상의 사유에는 '개인 사정'으로 기입해도 왜 연차를 쓰는지에 대해서 팀장에게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야 승인이 가능했습니다. "개인 사정인데요?"라고 대답했다가는 분명 그들의 눈밖에 나 천천히 고립됐겠지요.

 흔히 말하는 꼰대 문화가 많이 줄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업무 외적인 것에 많이 시달립니다. 말 그대로 기 빨린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아직도 라떼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저는 무던한 편이라 웬만한 일에는 그냥 수긍해버리는 편입니다. 일일이 이유를 따졌던 첫 직장에서 배운 것이 '포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최대한 둥그스름하게 사회생활을 하려 했는데, 문제는 그럴수록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워라밸이 제대로 구축된다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외의 시간은 나로 살아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퇴근과 함께 로그오프 하는 것이 힘든 회사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일해도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평가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회사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퇴근을 해도(심지어 퇴사를 해도) 연락이 옵니다. 마치 제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것 마냥 저를 찾는데 막상 제가 없다고 회사는 망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제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남자친구랑 주말에 노느라 피곤한가 봐?"라며 주말의 영역까지 침범합니다. 조금 취향에 맞는 옷을 입고 출근하면 옷이 짧다는 둥, 리본이 튄다는 둥, 촌스럽다는 둥 평가를 해댑니다. 그런 말을 듣고 반응하기 귀찮아서 무던한 옷을 입고 다닐 때는 "카톡 프사에서는 예쁘게 입고 다니는데 회사에는 왜 이렇게 막 입어?"라고 하더군요.

 제가 겪었던 최악의 일은 체중계 사건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상사가 제 몸무게가 궁금하다고 회사에 구비되어있는(왜 있는지 모를) 체중계에 올라가 보라고 했습니다. 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서 몸무게를 말해줬는데 못 믿겠다면서 기어코 올리더군요. 그러고는 "너랑 나랑 3킬로 밖에 차이 안 나는데 왜 이렇데 다르지?"라던가, "너 입사 초반에 쟀을 때는 50킬로도 안 됐던 거 봤었는데 살이 쪘네."라던가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짓을 무려 3년 동안 했습니다. 체중계를 버리기 전까지 체중계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가 너무 싫었습니다. 제 거절은 짓밟히고 그렇게 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자살 or 퇴사였습니다. 스스로가 사라지다 사라지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했을 때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순화해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지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전에 퇴사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소진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결국 밑천이 드러나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고서야 퇴사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즘 너무 힘들어하는 주위 사람을 보면 꼭 말해줍니다. 그렇게까지 회사 다니지 말라고. 너는 소중하다고. 돈을 벌고 회사생활을 지속하는 것도 네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혹시 다른 집단은 전(前) 직장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력서를 쓰고 있지만, 또 다시 헛된 희망을 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前) 직장보다 조금 나은 회사라면 무던하게, 적당히 자신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럼 요상한 히스테리나 꼰대 짓으로 죄 없는 아래 직원을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겪은 사회생활에서는 저도, 저를 괴롭히던 상사도, 그 상사를 괴롭히던 상사의 상사도 모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회사에서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회사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사회생활을 유지해나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관성으로 회사가 돌아갑니다. 모두가 회사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로 존재합니다.

 톱니바퀴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존재하겠지요. 돈 때문에, 딸린 처자식 때문에, 업무에 보람을 느껴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즐거워서, 사람이 좋아서, 다른 일보다는 나아서, 다들 이렇게 사니까. 어떤 이유라도 좋습니다. 다만 본인의 톱니날이 닳아 사라져버린 후에는 돌이키기 힘들어집니다. 그전에 포기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도,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잠시 쉬어서 충전을 하거나 다른 일을 찾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진정한 백수가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꼼짝없이 톱니바퀴 0190번으로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거든요. 모두가 불행한 결과를 내는 회사의 관성이 반드시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여 더 나은 '사회생활'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백수도 나쁘지 않습니다. 한 박자 쉬는 것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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