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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Aug 24. 2021

회사에 가지 않는 월요일

[퇴사일기#1] 백수 생활 시작

  4년 5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공식 퇴사일까지는 3일이 남았지만 휴가 처리의 마법을 부려서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모두가 출근하는 월요일, 저는 출근하지 않습니다. 회사에 가지 않는 월요일의 시작입니다.

 어젯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들떠버린 작은 가슴이 콩닥대느라 평소보다 2시간 늦게 잠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던 습관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져버렸지만 성실함을 버리기 위해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던지. (향기로운 아니고 짜릿함 맞습니다.) 늘 잠에 취해 정신없이 커피를 타느라 커피 향이 이렇게 좋은지 잊고 살았습니다.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컴퓨터에 앉아 회사 사람들과 카톡을 하며 업무를 했습니다. '보고서 하나만 쓰면 진짜 끝!'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보고서를 보내고서는 진짜 끝난 걸까 생각해봅니다. 며칠 전부터 휴가를 취소하고 출근하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뼛속까지 직장인이었나 봅니다.






 백수 생활을 시작하는 듯, 시작하지 않은 듯한 이 3일을 어떻게 보내야 보람 있을지 고민을 해보다가 스케쥴러를 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계획은 백수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평소였으면 지독한 집순이 기질에 집콕하여 인터넷 쇼핑으로 때웠을 일에 굳이 일어나 씻고 화장도 조금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에게 햇빛을 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알람을 맞추거나 의식해서 나가지 않는 이상 햇빛을 쬐거나 하늘을 보는 것은 꽤 사치스럽습니다. 퇴사를 결심하고 세운 계획 중에는 '하루에 1시간은 햇빛 아래서 걷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구나 놀라면서 계속 하늘을 보게 됩니다.

 요즘의 하늘은 딱 여름 그 자체입니다. 맑고 푸르고 쨍하고 높습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보았던 하늘이 떠오릅니다. 그 때로부터 20년쯤 지나서야 깨달았네요.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도 어린 시절에 향유할 수 있는 자유였다는 것을.

 여름 하늘을 즐기면서, 맛있어 보이는 구름을 구경하면서 나온 월요일 오전엔 의외로 사람이 많습니다. 종종 평일 쉬는 날에 집을 나섰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회사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울적해지곤 했습니다. 주말만 북적일 줄 알았던 거리는 평일에도 북적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9 to 6의 회사원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학생, 주부, 어르신, 외출 근무 중인 직장인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평일 거리를 거닙니다. 부러움과 시기심이 동시에 솟았던 예전 일이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지금 저는 퇴사자의 신분으로 그들과 함께 섞여 거리의 일부가 됩니다.

 이렇게 좋은 날 술이 빠지면 너무 서운할 것 같아서, 이 화창한 날에 맞이한 백수 첫날을 스스로 축하하며 호화스러운 점심으로 라멘과 맥주를 선택했습니다. 낮술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드는 마술을 겁니다. 안 그래도 화창한 날이었지만 낮술을 곁들인 세상은 정말 반짝거리는 듯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면접을 준비합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백수 생활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기대가 섞여있는 건 매우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빨리 돈을 벌고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한편에는 기왕 이렇게 쉬게 된 김에 몸도 마음도 재정비하고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자는 마음이 딱 반반으로 존재합니다.

 백수이고 싶으면서 백수이고 싶지 않은 묘한 상황. 앞으로 저의 퇴사일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치킨을 시킬 때 '반반 무 많이!'의 공식이 있는 것처럼 제 백수생활에도 정답이 있었으면 합니다.

 퇴사일기는 '하고도 잘 상의 록'의 줄임말로 나중에 지나고 봤을 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작성하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와 제 회사 생활과 관련된 생각도 쓰고 싶습니다. 더불어 저와 같이 대책 없이 퇴사를 선택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 퇴사일기를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자 일기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을 선택했습니다. 사적이면서도 사적이지 않은 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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