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Sep 14. 2021

소사(小事)에 집중하는 삶

[퇴사일기#7] 바라는 인간상, 원하는 삶

 퇴사 후 가장 큰 심경의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설거지가 즐겁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본래 저는 설거지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 보면 동거인(남편)이 마지못해 고무장갑을 끼곤 했죠.

 설거지가 즐거울 때는 술 취했을 때 뿐입니다. 처음엔 음복(飮福) 후 알딸딸하게 취한 제가 할만한 일이 설거지 뿐이라 고무장갑을 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술버릇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술 취해도 가족들이 좋아해주는 유일한 부분이자 저도 주변 사람들도 만족하는 비기(秘技)입니다.

 무기력증을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이 설거지라고 합니다. 딱 10분만 투자하면 깨끗해진 결과물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의 저는 설거지조차 못할만큼 지쳐있었는지 모릅니다. 무기력증을 이기기 위해 행해야하는 작은 한 걸음이 버거웠습니다.








 요즘은 소사(小事)에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사(小事)에 집중하는 삶을 조금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설거지 뿐만 아니라 샤워 후 물기 청소,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터는 일, 분리수거, 배달음식 포장 용기를 씻는 일, 물기가 제거된 접시 정리, 빨래개기 등 자질구레하지만 필요한 일들을 해내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제가 머무는 공간이 집 다워 진 것도 일상의 큰 변화입니다.

 또 다른 소사로는 샤워 후 팩하기, 텀블러 이용하기, 3km 이내 거리는 걷기, 자필로 편지 쓰기와 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늘 미뤄오던 작은 일들이 회사 일보다 큰 보람을 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돈을 번다는 이유로 회사 일에만 큰 비중을 두고 생활을 이루는 작은 일들을 습관처럼 무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방치가 삶의 매너리즘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회사 일에 집중하기 위해 생활 속 작은 일들을 포기하고 잠과 일을 반복해봤지만 삶에서 보람을 찾기 힘든 일상이 지속됐습니다. 통장에 따박따박 박히는 숫자가 주는 즐거움은 월급날 딱 하루였습니다.

 분명 애쓰고 있는데, 십년 후에도 이십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삶을 반복한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퇴사 후 작은 일들을 행하며 소사에서도 큰 보람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텀블러를 사용하는 일은 제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원래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귀찮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환경 문제까지 생각하며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제가 요즘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마음 속 관심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보태고 있습니다. 비로소 스스로가 바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게 된 겁니다. 사람이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데에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혹시 매너리즘에 시달리고 있다면 설거지를 권유 드립니다. 작은 일을 해내는 것에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설거지조차 할 힘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 절실하게 쉼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연습도 필요하고요.


        

이전 06화 뭘 그렇게 껴안고 살려고 애쓰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