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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Oct 24. 2021

행복은 회사 밖에 있어요

[퇴사일기#13] '취미 활동'이라는 처방전

"취미가 뭐에요?"


 스쳐 간 인연 중에 그렇게 물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이었고 저는 회사원이었는데, 회사 생활에 잔뜩 찌들 무렵 만났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게 '취미'란 이력서에나 쓰는 표면적인 것이었습니다. 요즘 이력서와는 달리 과거 제가 첫 취업할 때만 해도 획일화된 이력서 양식에는 꼭 취미와 특기를 적는 란이 있었습니다. MZ세대, 놀라지마세요. 주량과 흡연량을 쓰는 란도 있었답니다.


 이력서에 순진하게 진짜 취미와 특기를 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 또한 마치 '저는 이런 취미나 특기 활동을 통해 업무에 연관성이 많고 관심도 많으며 이런 역량도 있답니다'를 어필하기 위한 답변을 썼습니다. 그러니 회사와 연관되지 않은(때 묻지 않은) 남자친구가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당황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색깔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특출나게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어하는 것도 없는,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꿈이나 버킷리스트 같은 소소한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심했냐면,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버리게 될까봐 무서워서 휴학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다들 대학 가길래 대학가고, 공부하길래 공부하고, 때되서 취업하길래 취업하고, 그러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크게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에 부모님은 안심하셨고 저 스스로도 잘 살고 있다 착각했으니까요.


 당연히 취미도 없었습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고슴도치 밥주고 집 치우고 가끔 친구들 만나고. (당시엔 고슴도치를 키웠습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물었던 '취미'를 기점으로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평범하게 잘 자란 어른이 번듯한 취미 하나 없다니. 물론 목적이 있던 시절(예를 들어, 대학생 때 시험을 앞둔 때, 취업이 목표였던 때 등등)에는 그 목적을 이뤄야하니 취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회사에 다니고 돈을 벌며 제 삶을 꾸려나가는 평범한 어른이 취미가 없는 것은 왠지 안타까웠습니다.


 그 흔한 '음악 듣기'도 취미로 내세울 수 없었던 이유는 딱히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나 가수를 콕 집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멜론 최신 TOP 100이 제일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을 옮긴 뒤, 우연찮게 집 근처에 대학교가 있었고 학생들이 다니는 카페에 드나들다보니 문득 학생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던 시절입니다. 짙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후 취미 색출에 몰두했습니다. 다양한 것을 해보고, 가보고, 먹어보고. 또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그렇게 찾은 제 취미 활동은 꽤 다양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합니다.


 






 퇴사로 직장 생활을 정리한 이 시점에 되돌아봤을 때, 그 거지같던 회사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취미 활동에서 나왔던 것 같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혹은 버틴) 나에게 주는 커다란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고 서평을 쓰거나, 주말이면 집 근처 카페에서 사색하고 글을 쓰거나,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구해서 출사를 나갈 때 행복을 느꼈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사에서는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회사에서 행복을 찾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행복은 회사 밖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회사를 때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취미 활동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10분, 그것도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다음 한 주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선순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상적인 대답이 아니여도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결국 회사 생활도 나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돈만 벌면 뭐든 할 수 있을거라 착각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그저 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해야 행복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색깔 없이 사는 것이 편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빠져나오기 힘든 무력감과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지금 당장의 생활이 벅차서 주말이면 이불 속에서 나올 수 없는 심정도 이해합니다. 황금빛 미래를 위해 지금을 투자하는 것이라 버티는 것도 분명 의미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점점 줄어들테지 절대 늘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은 늘고, 건강과 체력은 고꾸라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를 위한 시간에 어색해하면서 노후에는 가능할 것이라 막연하게 꿈꾸지 마세요. 비록 24시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소비하지만, 행복은 회사 밖에 반드시 존재하고 우리의 인생은 회사에서의 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루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취미 활동을 찾아보는게 어떨까요.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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