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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Oct 22. 2020

겨울소년과 여름소녀 그리고 병 속의 편지-3

2. 병 속의 편지와 겨울소년-1

해나를 위해 돌리가 준 것은 반짝거리는 병이었다. 그 투명한 병 안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병 안의 편지가 물에 젖지 않기 위해 코르크 마개가 꼭 끼워져 있었다. 해나는 그 병을 열기 위해 있는 힘껏 마개를 빼려고 했지만 잘 빠지지 않았다.


어른들한테 부탁해볼까 생각했지만 왠지 어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해나는 코르크 마개뽑이를 몰래 가져와서 자신의 비밀 장소에서 열기로 했다.


뻥!


코르크 마개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뽑혔다. 그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가 꽂혀 있었다. 종이 두루마리를 꺼내어 잡자 해나의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이게 뭘까? 보물 지도?”


해나는 자신의 어깨 위에 자리 잡은 두루와 함께 그 둥글게 말린 종이를 펼쳤다. 그러자 거기에는 글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편지 같아 보였다.


“안녕, 내 이름은 바론라고 해. 나는 북쪽 겨울나라에 살고 있어.”


편지는 바론이라는 북쪽 겨울나라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겨울나라는 해나가 사는 여름나라와 반대로 일 년 내내 추운 겨울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일 년 내내 겨울이라니. 상상할 수도 없어!”


해나는 편지를 읽은 후 놀란 듯 두루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눈을 마주친 두루는 자기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를 냈다. 해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 편지를 어디에 사는 누가 읽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여기 겨울나라는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해가 거의 뜨지 않는 곳이야. 지금은 겨울이 아니었지만 겨울처럼 해가 뜨지 않고 캄캄해. 덕분에 눈이 내리고 나서 녹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지.”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름나라에서만 살았던 해나처럼 두루 역시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와, 눈이라니! 온통 하얗게 뒤덮인 모습이 얼마나 멋질까?!”


바론은 해나와 정반대의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해나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겨울 나라에서 태어나 한 번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나처럼 외로운 소년이었다. 다만 바론의 경우, 해나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고 바론의 마을에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장해줘. 나는 여기 혼자라 심심하거든. 어머니가 같이 계시긴 하지만 아프셔서 계속 주무시거든. 아버지는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배를 타고 나가셔서 나는 혼자 등대를 지키고 있어. 그럼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게, 안녕!”


해나는 바론의 편지를 다 읽자마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에 편지가 들어있던 것처럼 편지를 돌돌 말아 병 속에 넣고 코르크 마개를 꽂아서 돌고래에게 가져갔다.


“돌리야, 이걸 그 겨울 소년에게 전해줄 수 있겠니?”


돌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해나는 편지가 담긴 병을 가죽 끈으로 묶어 돌리의 몸통에 달았다. 그리고 돌고래들은 해나의 편지가 담긴 병을 메고 여행을 떠났다.




몇 주 뒤, 돌고래들은 바론이 사는 겨울나라에 도착했다. 하지만 겨울나라의 바닷가는 온통 꽁꽁 얼어붙어서 돌고래들이 헤엄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돌리는 소리를 내어 자신들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다행히 바론이 사는 곳은 바닷가 근처의 등대로, 바론이 키우는 개, ‘가루다’가 돌고래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루다는 돌고래에게 화답이라도 하듯이 짖으며 소년의 옷을 물고 바닷가로 끌고 갔다. 바깥은 밤이 아니었지만 낮에도 어두웠다.


“어어, 가루다 왜 이래?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영문도 모른 채 가루다에게 끌려 나온 바론은 어둠 속에서 발이라도 헛디딜까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치면 등대의 계단을 올라갈 수 없고 치료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히 조심하며 몸을 사렸다.


하지만 바론은 바닷가의 돌고래들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와! 돌고래다!”


바론은 그저 돌고래를 봐서 기쁜 마음에 뛰어갔다. 갑자기 마을에 어둠이 내려앉으며 바다가 꽁꽁 얼어붙은 이후로 돌고래들도 보기 힘들어졌기에 바론은 마음이 설렜다.


“어?! 이건 병이잖아? 내가 쓴 편지에 답장이 온 걸까?”


돌리가 가져온 병을 건네받은 바론은 답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바론은 기쁜 마음에 그 자리에서 당장 병을 열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꺼운 장갑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서인지 마개가 잘 열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올라가서 열어봐야겠다. 고마워, 돌고래들아!”


하얗게 입김을 내뿜으며 바론은 중얼거렸다. 바론은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온 돌고래에게 감사의 인사로 청어 몇 마리를 주었다.


많이 주고 싶었지만 바다가 점점 얼고 있어서 고기를 잡기도 쉽지 않아 졌다. 돌고래들도 그런 상황을 아는 듯 청어를 받아먹은 후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하고 얼어붙지 않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돌고래들과 인사를 나눈 후 바론은 서둘러 등대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간단하게 수프를 드신 후에 머리가 아프다며 방에 누워계셨다. 병 속의 편지를 꺼내보려던 바론은 어머니가 수프도 다 드시지 않고 남긴 것을 보며 걱정이 되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네, 엄마가 계속 아프셔서 어쩌지?”


가루다도 바론의 어머니가 걱정되는지 낑낑거렸다. 어머니의 병이 시작한 건 겨울나라가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바론이 사는 마을과 겨울나라에 어둠이 내려앉은 것은 약 한 달하고도 보름 전, 이 편지를 보내기 조금 전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여름에는 해가 밤새도록 떠 있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름은 먹구름에 가려서 해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해가 사라진 것처럼 낮에도 밤에도 겨울처럼 컴컴했다. 일 년 내내 겨울이 계속된다고 해도 여름은 겨울보다는 온화한 날씨였다.


그런데 햇볕도 없는 겨울이 다시 찾아오자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씩 아프다며 몸져눕더니 곧이어 바론의 어머니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게 되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아픈 것은 지금까지 의사 일을 하면서 처음 보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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