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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ka Oct 22. 2020

겨울소년과 여름소녀 그리고 병 속의 편지-4

2. 병 속의 편지와 겨울소년 -2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아픈 것은 지금까지 의사 일을 하면서 처음 보는 군!”


마을의 의사들도 뚜렷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다시 찾아온 겨울이 이것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몇은 그 먹구름이 나오는 곳을 향해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 반 사이에 마을은 아픈 사람들과 그 원인을 찾으러 떠난 사람들로 텅텅 비었다.


“안 되겠어. 이대로 가다가는 마을은 물론 이 나라가 엉망이 될 거야. 바론, 네가 어머니를 잘 돌보고 있으렴. 나는 다른 아저씨들이랑 엄마 약을 찾아오마.”


어머니가 앓아눕고 일주일이 지나고 전혀 나아지지 않자, 바론의 아버지는 남쪽으로 가서 약을 구해오겠다고 사람들과 배를 타고 떠났다.


겨울나라는 점점 꽁꽁 얼어붙어 먹을 것이나 약에 쓰일 재료도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제쯤 약을 구해서 돌아오실까?”


바론은 아버지의 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등대에 담아 등대를 지켰다. 그리고 어머니를 간호하며 아픈 사람들을 빼면 텅 빈 마을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책에서 읽은 것처럼 편지를 써서 병 속에 넣어 띄우기로 한 것이다.


“이 병의 편지를 누군가 발견하게 된다면 새로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편지를 병에 넣어 바다에 띄우며 바론은 이 편지로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별은 바론의 기도를 듣고 그것을 가까이 있는 나무에게, 나무는 자기를 스치는 바람에게, 바람은 파도 속에서 가끔 얼굴을 내미는 돌고래들에게 전했다.


돌고래는 바람이 밀어주는 병을 발견하고 그것을 남쪽에 있는 또 다른 외로운 아이인 해나에게 전해주었다.


바론은 자기 방에 들어와서 병에 담긴 해나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 바론! 나는 여름나라에 사는 해나라고 해. 돌고래가 네 편지를 전해줘서 읽게 되었어. 돌리(상처가 나서 내가 돌보던 돌고래 이름이야, 내가 지었는데 예쁘지 않니?)가 내 편지를 너에게 잘 전해줬을까 궁금하다. 일 년 내내 겨울이 계속되는 곳이라니 너무나 신기하다. 여기는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곳이거든. 여기는 매일 변화가 없어서 심심해. 나는 다른 데 가보는 게 소원이야. 특히 네가 말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나도 꼭 한 번 보고 싶어. 지금도 눈이 그렇게 내리니? 그럼 너의 답장을 기다리며 - 해나”


해나의 편지는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바론은 해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잘 아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해나는 왠지 활발하고 모험심이 강한 소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 이름은 해나래. 우리에게 편지를 전해 준 돌고래 이름이 돌리래. 난 왠지 해나가 마음에 들어. 넌 어때, 가루다?”


가루다는 편지를 킁킁거리며 달콤한 코코넛 향을 맡고 기분이 좋은 듯 편지를 핥으려고 했다.


“어어, 가루다 그러면 안 돼!”


바론은 가루다가 편지를 핥지 못하도록 편지를 높이 들어 가루다에게서 멀리 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특히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바론의 마을에는 바론의 또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나면서 바론 나이대의 아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바론의 가족들도 그때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집안은 대대로 등대를 지키며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해왔다.


그들에게는 어둠이나 태풍 속에서 길을 잃은 배들이 길을 찾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의지할 곳이 되어준다는 등대지기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그들마저 등대를 떠나면 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바다 위의 배들은 누가 인도해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등대지기로서 등대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몸져눕게 되시면서 다른 데로 이동하기도 힘들어졌다.


이제는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가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등대를 지키는 게 바론의 몫이었다.


“그러면 답장을 써볼까?”


해나의 편지를 책상에 펼쳐두고 바론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서 자꾸 굳어지는 잉크를 촛불에 데워 가며 쓰느라 편지를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어차피 그에게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마을에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어둠이 짙게 깔려 바론은 마치 겨울잠을 잘 시기에 홀로 잘못 깨어나 억지로 깨어 있는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해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바론에게는 어두운 밤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제 그는 외롭거나 심심할 때면 해나에게 편지를 쓰면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리고 그 위안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안녕, 해나. 네 편지를 잘 받았어. 여기는 아직도 바깥에 눈이 계속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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