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괜찮을까? - 이대에서 만난 가게들 두 번째 '가죽공방 너테'
글. 사진 @seodaemun.9 가게 @neote_
*이 콘텐츠는 서대문구청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바람 따라 흩날리던 홀씨가 뿌리내릴 자리를 보고 착지해 싹을 틔우듯이, 상점을 오픈하려는 사람도 뿌리내릴 자리를 보고 공간을 연다. 홀씨가 생장 조건이 뛰어난 대지를 선호하듯 상점을 오픈하려는 사람도 상권이 확실한 곳을 찾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가죽공방 너테는 홍대와 신촌에 비해 척박해 보이는 이대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마음으로 이대를 바라보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이화여대 52번 길 골목에서 가죽공방 너테를 운영하는 황태현 대표를 만나 보았다.
가죽공방 너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기도 했었죠. 학교에서는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작업할 수 있었는데,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요. 그때는 디자인의 전 과정을 밟지 못하는 것에 갈증을 느꼈었어요. 하지만 패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가죽 공예를 시작했어요. 2019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5년 차가 되었네요.
너테라는 브랜드로 이대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화여대 앞 상권에 걸려 있던 업종 제한이 풀리면서 장기적으로 이대 거리에 다양한 시도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까지는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나 방학기간에 스산하기는 하지만, 맥락이 축적되지 않은 동네에 비해 이대는 그 나름의 맥락이 축적되어 있으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약제로 운영하는 공방이다 보니 꼭 유동인구가 많을 필요는 없었던 부분도 이대를 선택했던 전략적인 이유였죠.
시장조사를 하면서 여러 군데를 다니며 느낀 건데 가게는 십이지장이고 사람은 피라고 생각해요. 피가 돌면 언젠가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이대 거리도 언젠가 새로운 얼굴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방 운영은 어떻게 이어오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원데이 클래스와 제품 판매도 하고 있지만 주로 정규 수강과 창작 단품, 주문 제작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공방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공예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해리티지가 축적되지 않는 출강이나 원데이 클래스는 주력으로 밀고 있지 않으려고 해요.
착장 단품은 수강생이 원하는 제품과 대략적인 디자인이 있다면 수강생 주도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요. 수강생의 숙련도에 따라 키트를 만들어드리기도 하죠.
제작물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공수가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제 스스로의 기준만큼 제작물의 수준을 유지하려고 해요. 하지만 제작물의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판매 가격을 맞추는 일은 어렵죠. 아무래도 제품의 수준을 올리면 당연히 가격이 비싸니까요.
제작물을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만들기 때문도 있어요. 너테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제품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예술에 가까운 작품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 경계에 있는 제작물로 부르고 싶어요.
제가 하려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요. 지인들은 망해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한 마디씩 하죠. 하지만 이 부분에서 타협하게 되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나 헤리티지가 깨진다고 생각해요. 망하면 블로그, 인스타 새로 파면된다고들 말 하지만 제 브랜드를 꾸준히 지켜보거나 가죽 공예에 관심 있는 사람,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완성도 있는 제품을 보곤 금세 알아차릴 거예요.
요즘은 SNS를 통해 물리적 거리가 먼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으니 SNS를 보고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얼마 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예전부터 너테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셨었던 분이 예약하려고 DM을 주셨는데, 스케줄을 잡을 때 ‘한 달 후 며칠’로 정확한 날짜를 콕 찍어 말씀하시더라고요. 예약일까지 여유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요. 다른 날은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셔서 그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분이 울산분이셨는데 지인 결혼식 때 서울 올라오는 날 수업 듣고 다시 돌아갈 계획으로 예약하셨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계속 지켜봤다면서요. 손님께서 찾아온 물리적 거리를 떠올려보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더라고요.
또 브랜드 이름을 너테로 바꾸기 전 디자인을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도 계세요. 울산만큼 떨어져 있는 경남 창원분인데 말이죠. 네이버 예약이던 인스타그램이던 플랫폼이 많이 열려있다 보니 가능한 일 같아요.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내 방식대로 쌓아가는 게 맞는구나 싶더라고요.
너테가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너테가 만드는 제작물은 흔히 ‘잡화’라고 분류되는데, 지칭하는 단어 자체가 아직은 패션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주변물로 인식되어 있어요. 이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조금 더 판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길거리에서 젊은 사람한테 차이나 카라나 헨리넥, 보트넥의 차이를 물어보면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옷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전체적으로 제작 수준이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소비자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어요. 가방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운영하면서 느낀 이대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보니 서로 잘해보자며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는 없어요. 그저 일을 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있는 52번가 골목도 다르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이 골목의 활기는 상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점들을 보면 어딘가 쳐져 있어요. 커튼으로 통창을 막아버린 가게도 있는데 골목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저 혼자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바람을 일으킨다면 근처 가게와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꾸미고 싶어요. 다 같이 힘낼 수 있다면 가죽 공예 제품으로 영업시간 팻말이나 오픈, 클로즈 간판 등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시간이 흘러서 저처럼 생각하는 상점들이 하나씩 생긴다면 재미있는 일을 꾸며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 상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동네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공용 주차타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려면 교통이 편리해야 하니까요. 물론 어려운 일이죠.
조심스럽긴 하지만 행정이 관심 가져주는 만큼 확실한 사업 역량을 보여줬으면 해요. 얼마 전 대현문화공원에서 열렸던 행사가 있었는데 상인회장으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았어요. 프로그램 취지라던지 기획, 행사 내용이 담긴 공문이 올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더라고요. PPT 자료를 요청했는데 받지 못했고요. 포스터라도 붙여달라고 전해줬는데 조금 민망한 정도의 제작물이었어요.
결국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행사가 열린 날 지나는 길에 살짝 봤는데 많이 아쉽더라고요. 이대 거리에서 열리는 행사인데 이대생을 위한 콘텐츠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쉬운 부분이었죠.
거리 정비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상인들은 당장 먹고살기 어려우니 공사로 인해 매출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기도 하지만, 이를 설득하는 것이 행정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한 군데의 탓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리를 정비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방문하게 하는 첫인상에 도움을 줄 거예요. 이것이 도시라는 거대한 틀을 구성하는 뼈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더 신경 쓰는 모습이 보이면 저처럼 이대 거리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대 상권을 구성하는 가게의 종류도 변할 필요가 있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손님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끌리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대 상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옷 가게는 경쟁력이 떨어져요. 아직까지 단골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이대 거리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가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소ㅣ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11 가죽공방 너테
위치ㅣ이화52번길 골목
시간ㅣ11:00 - 23:00
*휴무일은 인스타그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