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술과 함께 사라진 시간을 세어보면 100일은 넘을 것 같다
또 그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새벽과 아침의 어느 사이, 어제의 숙취와 함께 갑자기 눈이 떠지는 느낌. 눈을 뜨면 우리집 천장이 보이는 것에 안심하지만 그와 함께 지나가는 단편적인 기억들이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그 느낌.
수치스러운 기억만이 떠오르면 괴로워하며 다시 눈을 감으면 되지만, 수치스럽다 못해 몸이 괴롭고 목구멍부터 쓰리다면 아무리 괴롭더라도 일어나서 문 앞과 화장실을 살펴봐야 한다. 혹시라도 내가 게워낸 흔적이 남아있는지, 그렇다면 빨리 치워야 하니까.
이립은 한참 넘고 불혹이 더 가까운 나이. 다른 유혹에는 잘 흔들리지 않는데 술의 유혹에는 너무 잘 흔들린다. 다시는 이렇게 술 먹지 말아야지, 라는 결심과 후회와 좌절은 해를 거듭할 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를 괴롭힌다.
술은 마치 스무살 때 짝사랑하던 그 남자애 같다. 너무 좋아해서 매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내 남자는 아니니까 평소에는 살짝 거리를 둔다. 하지만 가끔 너무 좋아하는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해 울며불며 매달리기도 하고, 한번 그러고 나면 수치심과 상처받은 자존심에 당분간은 널 보지 않겠어, 하며 멀리 하지만 금새 좋아하는 마음이 들끓어올라 다시 먼저 만나러 달려가고 만다. 그렇게 내 짝사랑은 진전되지 않은 채 제자리를 반복했다. 문제는 스무살의 짝사랑은 스물 두살에 끝났지만 술에 대한 짝사랑은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며칠 전 있었던 회식에서 또 나는 취했고, 기억을 잃었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며 입방정을 떨었다. 이직을 한 후 냉정하고 카리스마있는 과장의 모습을 잘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회식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하루 저녁 몇시간의 술과 유희가 너무 많은 내 이미지를 앗아가고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나는 대체 술 마시는 것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고 왜 이럴까’
스무살도 서른살도 아닌, 사십을 앞두고 있는데 어쩜 아직도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 이럴 때는 친한 친구들의 ‘나도 그랬어!’'그럴 때도 있지!’ 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마음이 우울하다. 하루종일 침대에서 자책감과 한심함에 시달리다 갑자기 이런 내 수치의 기억들을 글로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글을 쓰면 생각과 마음이 정리된다. 별것 아니었던 기억들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고, 큰 일이 났던 것만 같은 기억들이 생각보다 별 게 없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술과 관련된 역사들을 써보려고 한다. 어차피 지나간 일들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 대충 그랬지 하고 넘겨버릴 수 있는 기억으로 만들고 오늘 무너진 나의 자존감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건 말도 안되지만 내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다.
물론 이 걸로 술을 끊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자책하는 걸 좀 줄이고, 이런 게 때로는 글감이 되기도 한다, 라고 하는 변명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