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술, 소맥
일본에서 돌아온 후 나는 한동안 어설픈 술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어학연수 전까지 워낙 술을 싫어하고 안먹었기에 한국 친구들은 내가 술을 먹게 되었다는 걸 잘 믿지 않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어설프게 모든 사람에게 술 도전장을 날리고 다닌 것이다. 참으로 하찮고 멍청했다.
시작은 학교 선배들이었다. 그간 손가락으로 소주 구멍을 막던 싸가지 후배였기에, 좋아하는 선배들과는 술한잔 하며 다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고, 달라진 나를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선배 술로 이길 수 있다며 과하게 달려들었다. 그럴때마다 마셨던 술이 바로 소맥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술이 아닌 알콜을 마시는 것같은 느낌을 싫어하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면 너무 빨리 취해서도 싫어한다. 그런데 소맥은 다르다. 알콜램프를 마시는 것 같던 소주가 맥주에 한잔 빠지는 순간, 거북한 알콜향은 사라지고 맥주의 톡쏘는 맛 사이에 소주의 단맛만 채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비율은 소주컵 반잔 분량에 호프집 작은 맥주컵에 3/4 정도 따르는 비율인데, 그렇게 하면 한입에 털어넣기에 딱 좋은 소맥의 비율이 된다. 그 소맥이 달다고 느껴지는 순간, 오늘과 내일은 없는 것이다.
그 단맛에 속아 얼마나 많은 소맥을 마셨는지. 선배들 앞에서는 센 척 하느라, 어떤 날은 소맥이 정말 달아서, 어떤 날은 회식에서 정말 수많은 소맥을 말고 마셨다. 시작이 어설픈 술부심이어서 그런지, 소맥을 먹고 만취하면 나는 자신감이 과해지곤 한다. 과하게 행동이 커지고, 과하게 솔직해진다. 특히나 불편한 사람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마는 그런 입방정 술버릇이 있는데, 문제는 주변에서 '그게 사이다였다!' 라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칭찬 받은 강아지마냥 신나서 더 떠들어댄다는 것이다.
전 직장을 다닐 때 별로 좋아하지 않던 대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주변 사람에게 떠넘기고, 말로만 모든 공을 가로채는 것으로 직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고,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그에게 호되게 당했다.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아직 일을 익혀야 하는 단계니까, 이건 한번쯤은 담당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등등 점점 그는 내게 더 많은 일을 넘겼다. 같은 행사를 담당하고 다음날이 행사 날인데 그가 일을 모두 내게 떠넘기고 술을 마시러 가서 나 혼자 야근하고 마무리했던 날도 있었다. 다음날 술에 쩔은 그가 행사장에 들어와 팀장님들이 있는 방에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라고 올렸을 때는 정말 살의가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 살의는 소맥을 먹은 회식 날, 튀어나오고 말았다. 프로젝트가 잘 되어 전 직원이 모여서 회식을 하는 날이었고 소맥을 마신 나는 또 거나하게 자신감이 차오르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 대표님이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수고했다며 술 한잔씩을 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소리질렀다.
대표님!! 저 대리 좀 혼내주세요!!
저 시키 일을 너무 안해요!!!!!
내 한마디에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뭐 그런 소리를 하냐 소리를 질렀지만 주변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모두 만취한 상태였다) 대표님도 뭐가 그리 웃긴지 껄껄 웃으며 어떻게 혼내줄까, 라고 했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이 난 나는 그간의 일들을 모두 이르기 시작했다.
일도 떠넘기고, 술자리만 다니구요!!
꺼지라고 좀 해주세요!!!
살의에 가득찬 입방정이었는데 모두가 소맥을 마시고 만취한 게 문제였다. 내 말이 이어질 수록 주변 사람들은 더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고 그와 나는 무슨 초등학생 처럼 니가 먼저 그랬네, 내가 먼저 그랬네 하며 유치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진심은 소맥에 날아가고 그저 모두의 재밌는 술자리 에피소드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그와 나는 종종 술자리에서 티격태격을 선보이며 싸우는 게 회식의 재미요소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때가 운이 좋았을 뿐, 아슬아슬한 술버릇이라고 생각한다. 과하게 말이 많아지는 것이 그다지 좋은 술버릇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깨닫고, 남들을 보고 깨달으면서 최대한 듣고, 내 말은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또 술이 술술 들어가고 내가 술이 되면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지만, 얼마전에도 또 아슬아슬했던 자리가 있어서 (그 때도 소맥을 마셨다...!!) 요즘은 차라리 소맥을 피하려고 한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