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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완 Dec 26. 2022

제주, 한잔 : 해장은 갈칫국으로

이 모든 글의 원천은 사실 갈칫국이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제주에서 마시는 술은 취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아니다. 

많이 마시면 취한다. 사실은 자주 취했다. 


기분에 취해 바다에 취해 술이 술술술 들어가다보면 헛개수가 들어간 것 같은 제주의 공기도 소용없고 다음날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일어난다. 그 정도로 마신 날은 눈부신 제주 바다를 봐도 울렁거리기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갈치국을 먹는다. 갈치와 배추와 단호박이 들어간 묘한 음식. 실제로 먹어보기 전에는 너무 비리고 이상할 것 같아서 상이 펼쳐지고 한숟갈 뜨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한입 먹어보는 순간 식도를 강타하는 시원함에 ‘오늘부터 해장 1일’ 이 되어버린 나의 최고의 해장 파트너 갈칫국. 



갈치가 통으로 들어갔지만 하나도 비리지 않고 담백하고, 큼지막하게 들어간 배추가 시원한 맛을, 단호박이 단맛으로 속을 안정시켜준다.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울렁거림도 갈칫국을 한입 먹으면 소화제처럼 씻겨져 내려간다. 갈칫국 한그릇을 다 먹고 나면 깨끗하게 살아난 새로운 간과 함께 ‘오늘도 마실 수 있겠다’ 하는 경건한 마음이 든다. 실제로도 마셨고. 

 


생각해보니 내가 제주에서 마신 수많은 술은 든든한 갈칫국이라는 지원군이 있어 가능했다. 매번 간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게 도와주고 에피소드들을 쌓게 해준 갈칫국. 그러니까 이번 글을 쓰게 해준 것 역시 술이 아니라 갈칫국이다. 그러니까 이 글의 마무리의 영광을 나의 해장을 책임져준 칼칼한 갈칫국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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