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설진(이하 설):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이설진입니다. 저는 힘들거나 지칠 때 책이나 영화를 찾게 되더라고요. 이런 계기로 만난 작품이나 배우의 위로가 제 안에 진하게 기억돼 있어요.
배우를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설: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은 언제나 연예인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춤이랑 노래 둘 다 소질이 없거든요. 사실 막연한 꿈이었는데 문득 ‘연기를 한 번 해볼까?’라는 호기심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연기가 어렵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어려우니까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에 배우라는 진로를 결정한 자녀에게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네요.
설: 처음에는 반대하셨죠. '취미로 하는 게 어떻겠냐.'라며 저를 설득하셨어요. 그런데 재수까지 실패하게 되니까 삼수를 시작하기 전에 말씀하시더라고요. ‘10년, 20년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 무명 배우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연기에 도전해 보고 아니라면 지금 그만둬라’라고요.
연기에 도전하게 된 호기심이 된 계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설: 연극 <염쟁이 유씨>가 또 다른 계기였어요. 염을 소재로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라 학생이던 저에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요.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배우가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무대에서 저렇게 멋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배우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갖게 된 시작이었어요.
그만큼 연기와 작품이 본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보네요. 그렇다면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설: 타 장르의 예술도 무언가를 찍고 만들면서 창조라는 걸 하잖아요. 그리고 결과물로써 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고요. 이처럼 연기에도 창조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연기는 결과의 예술이 아니라 과정의 예술인 거죠. 배우가 표정, 목소리, 손짓 같은 신체와 함께 그 캐릭터의 감정까지 함께 연기할 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잖아요. 아마 과정이 창작물이 되는 건 연기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그림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완성됐다고 하고 작품을 끝내야지 완성이잖아요. 그런데 연기라는 건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거든요. 내놓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요. 당장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배우의 연기가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만 기다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현장에서의 생동감이 연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나요?
설: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연기를 한다고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죠. 연기를 통해서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본인은 캐릭터에 어떤 종류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나요? 우리가 흔히 색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설: 사실 지금까지도 제 색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갖고 싶은 색은 있어요. 최근에 본 넷플릭스 시리즈 <DP 2>에 출연한 구교환 배우를 좋아해요. 독립영화를 비롯하여 구교환 배우가 참여한 다양한 작품을 봤거든요.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잘 맞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골고루 갖춘 배우고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 번은 상황극을 정해두고 언니와 동생이 싸우는 장면을 연기한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언니가 갑자기 동생에게 부모의 역할을 하는 거죠. 동생은 갑자기 변한 그런 언니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요. 그때 제가 동생 역할로 언니를 다그치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연기하니까 ‘제 안에 할머니 한 명이 앉아 있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점이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저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가족관계가 궁금해지는데요. 형제자매가 있나요?
설: 언니, 오빠가 있어요. 제가 막내로서 언니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연기에 녹아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아이 같은 모습은 저의 막내 기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요(웃음)?
본인이 매력을 느낀 구교환 배우처럼 연기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설: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도 잘할 수 있는 연기, 잘 못하는 연기가 있거든요. 부족한 부분은 레슨도 받고 워크숍과 오디션을 통해서 본인을 실험해 보고 다양한 환경 속에 던지는 거죠.
연기를 잘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설: 배우의 연기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연기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좋은 배우란 무엇일까요?
설: 좋은 배우란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흥미를 끌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관객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배우, 스태프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죠.
본인이 맡은 배역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나요?
설: 장르의 주제를 제가 정할 수는 없잖아요. 작가나 감독들이 정한 주제나 스토리 라인이 있기 때문에 주제가 같아도 배우마다 인물을 해석하는 게 다르고요. 제 해석을 연출자나 감독에게 상의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방향을 찾고 있어요.
서로의 피드백으로 방향성을 맞춰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찌 보면 배우 스스로의 갈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 본인의 해석과 좁힐 수 없는 의견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설: 만약 서로의 의견을 좁힐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의 해석과 연출진의 해석, 두 가지 모두를 연기하고 모니터를 같이 할 것 같아요. 그때 판단하라고요. 만약 그 선택이 저와 다르더라도 그건 연출진의 몫이니까 그 선택을 존중해야겠지요.
연기를 선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과 사건 인물을 분석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긴 시간에 비해서요.
설: 이러한 간격을 줄이는 방법은 훈련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신체 훈련과 상상력 훈련이 실제로 배우에게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흔히 말해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져요’라는 말이 있잖아요. 일종의 신체를 통한 심리 제스처라고도 하는데 저는 간단하게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칭해요. 배우들도 그런 방법을 실제로 많이 쓰거든요.
저는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동기들끼리 연기 스터디를 하기도 해요. 스터디에서는 제 연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워크숍은 현재는 쉬고 있어요. 알바 월급을 모아서 다시 시작할 계획이에요.
워크숍 비용과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어떤 분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설: 보통 한 달에 평균 3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해요 기간은 3개월이 보통이고요. 그 기간 동안 하나의 작품을 함께 준비하는 거죠. 공연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연기 프로필 영상을 찍기도 하고요. 워크숍은 연출가, 교수님이 보통 진행해요.
꼭 하고 싶은 배역이나 작품이 있을 것 같아요.
설: 저는 액션 코미디물을 하고 싶어요. 진지한 복수극의 허당 여성 킬러로, 작품의 내용과 캐릭터의 균형을 잘 갖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워너비로 삼은 구교환 배우처럼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좋은 영감을 받아야 될 텐데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감을 본인은 어디서 주로 받는 편인가요?
설: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요. 그중에서도 소설을 많이 읽어요. 소설 안에 있는 표현들은 섬세하거든요. 연습하다 보면 반복적인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소설의 섬세한 표현을 통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표현을 할 수도 있거든요. 텍스트 그대로를 상상을 해보고 그 상상을 연습을 통해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반복적인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 어찌 보면 모든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너리즘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설: 연기에서 매너리즘이라고 한다면 뻔한 연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책에 있는 대사를 읽거나 영화를 통해서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다른 배우들의 감정 선을 찾아보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흡수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간혹 연기를 할 때 제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작품 속 말투나 대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는 거죠. 사실 인지하기 쉬운 부분이 아니에요. 이럴 때는 브이로그가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핸드폰을 켜놓고 제 말투를 다시 들어보는 거죠. 캐릭터마다 특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제 말투만 사용하기보다는 변형하여 적용하고 있어요.
지친 마음을 위로 하는 배우가 될래요 (下) 편에서 계속됩니다.
1. 인터뷰이 이설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noowhiittee/
2. 인터뷰어 배대웅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fyouknow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