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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Aug 28. 2024

사이렌, 공습의 추억, 소리와 전쟁

평화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

사이렌과 책상 밑의 어린아이들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 전투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58분경 서울 수도권에 울린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 늘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것이 멈추고, 아이들은 책상 아래로 숨어들어 뿔 달린 ‘공산당’의 출몰을 두려워해야 했던 시절의 저 실제상황은 국민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지만 햇볕 따스한 초여름 유치원 아이들에게 그 전투기는 좋은 그늘이거나 신기한 비행기 장난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공포였던 비행기는 이제 일상의 소품이 되었다. 

(실제 이웅평 대위가 사선을 넘어 귀순할 때 탔던 Mig19 전투기, 사진출처 : 아시아경제 보도에 사용된 이 장면의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


 전쟁의 실질적인 시작은 ‘소리’다. 가공할 만한 파괴력의 폭탄이 터지기 직전 미사일이 땅에 닿기 직전에야 울리는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 지금도 곳곳은 전쟁과 테러로 신음하고 있고 사이렌 소리는 전쟁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음악 레퀴엠이 되었다. 


 지금도 갑자기 거리를 걷다가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면 뜬금없는 세계의 종말이나 사랑하는 이들과의 황망한 이별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이렌’ 자체는 아주 오래된 그리스 신화의 한 정령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사이렌(Siren)은 그리스의 님프(Nymph, 정령-괴물)다.


 대항해시대 망망대해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소리로 암초로 유인해 침몰하게 만든다는 악령으로 이름 높았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와 얼굴로 그려진 사이렌(신화적으로는 ‘세이렌’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의 몸은 반인반조 새의 몸통과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Siren, 루브르 박물관 소장, BC6세기경 작품

   신화적인 상상력을 떠나서 망망대해에서 만나는 새의 의미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유혹의 상징이 혼종(Hybrid)된 사이렌(세이렌)은 인간의 욕망과 죽음의 현실이 혼종 된 모순적인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세이렌과 죽음을 향할 만큼 아름답다는 그 노래는 실존하는 소리일까? 혹은 마음과 욕망이 빚어낸 상상의 소리일까? 지금도 ‘휴전 중’인 이 땅에서 세이렌의 노래 아니 사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오로지 적군과 아군, 내편과 남의 편으로만 나뉘어 죽음의 결론만이 존재하는 ‘전쟁’. 


전쟁이 나면 ‘라디오’를 꼭 챙기세요!...?

(출처 : 행정안전부)

  전쟁(戰爭) 싸우고 다툰다는 의미로만 이루어진 말이다. 전부 싸운다(全爭)라는 뜻 같지만 오로지 싸움만 있을 뿐 전부와 부분은 의미가 없다. 지금과 나중도 의미가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파괴한다. 특히 한반도에 짙은 그림자로 드리워진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생존만이 모두의 숙명이 된다. 핵전쟁이 아닌 전쟁 수준의 기상재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정부의 국민행동요령을 보면 항상 ‘라디오’가 등장한다. 오랜 기간 가장 제한된 조건에서 공식적인 정보와 뉴스를 얻을 수 있는 미디어, 소통의 도구는 라디오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대피하면서 정보를 듣는 2중 시간 창출(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미디어 이용시간)의 최적화된 미디어는 ‘라디오’다. 


  사이렌 소리도, 전쟁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단순한 이동통신사 기지국의 화재만으로도 최신 스마트폰은 먹통이 되기 일쑤. 혜화동 KT지국 화재 때 많은 시민들이 ‘전쟁도 아닌데 라디오만 들었다(경향신문)’라고 인터뷰를 한 걸 보면 양질의 정보와 데이터를 손안에 쥐어주는 스마트폰도 통신사가 멈추면 비싼 카메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젊은 세대는 ‘라디오’가 뭔지 모르거나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더 큰 문제는 남녀노소를 떠나 라디오를 갖고 있는 국민들이 없다는 것. 스마트폰의 뛰어난 성능과 배터리능력으로 FM라디오를 수신하면 무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한 정보의 고립에서 구조될 수 있다고 설득해도 묵묵부답. 이젠 그나마 라디오를 듣는 가장 흔한 장소인 ‘자동차’에서도 라디오 ‘버튼’은 사라지고 있다. 미디어를 누르고 라디오를 찾아야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통해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을 겪는 지역의 스마트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줄 순 있다. 하지만  최근의 전쟁은 정규전의 의미보다는 게릴라전의 성격이 더 강하다. 길고 긴 폭격과 민간인의 죽음과 고통, 게릴라적인 반격이 흔하다. 이런 전쟁에서는 동영상 SNS 플랫폼으로 무수한 영상 클립이 전쟁과 무관한 지역까지 퍼진다. 선전전(Propganda war)도 시대의 기술과 이용행태에 맞춰졌고. 보다 조작이 쉬워졌다. AI기술이 더해지면서 그 기술과 전략은 더 고도화된다. 자국의 대통령이 가짜 항복선언을 하는 영상을 유포하는 것도 쉬워진다. 전장에서 이 영상을 본 군인은 큰 혼란과 오판에 빠질 수도 있다. 오디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정 주파수를 가로챈 FM라디오를 조작하기란 오히려 단순해서 어려울 수도 있다. 


(뉴욕경찰이 사용 중인 이른바 음향대포 'LRAD')


 소리도 대포가 되어 당신을 죽인다?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뜻하는 사자후(부처의 설법이 사자후와 같았고, 이 소릴 듣고 모든 악마가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는 주성치의 ‘쿵푸허슬’에서도 나온다. 실제로 거대한 호루라기를 만들어 부는 실험에서 사람의 장기가 손상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커다란 스피커의 음량에 노출된 사람의 청각뿐 아니라 내부 장기도 다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소리 정확히는 음파가 무기로 상용화되었다. 해적을 퇴치하거나 시위대를 해산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 무기 이른바 ‘음향대포’다. 직접적으로 물리적 파손을 최소화하면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제한적 공격무기인 셈인데 성공과 실패의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소리는 심리적인 타격까지 입히기 때문에 단순한 음향공격 외에도 군인의 몸 안에 있는 ‘싸울 의지’를 꺾고 공격하기 위한 목표로 확성기 방송과 라디오를 이용한 심리전 방송을 사용한다. 


 특히 남북 긴장의 핵심요소가 된 휴전선 대북 확성기는 고요한 밤 개성 시내 잠든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실시간 방송이 될 수준이라고 하니 북한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심리적 내상을 입을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긴 복무기간 동안 전방에 있던 군인들은 이미 ‘남조선’의 대중음악을 몇 곡씩은 외우고 있을 것이다. 노래는 더 침투력이 강하니까... 이미 남과 북의 병사들은 확성기 방송 덕분에 하나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방아쇠를 당겨야 할 준비태세를 갖추면서도 영화 ‘공동경비구역(박찬욱)’의 송강호처럼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흥얼거리거나 영화 ‘고지전’의 전투 직전 남북 병사들처럼 ‘전선야곡’을 슬프게 같이 부를지도 모른다. 소리는 보이지 않아서 쉽게 전선을 넘고, 철조망을 넘는다. 그렇게 넘어서 가장 가깝고 은밀한 군인들의 가슴속에 닿는다. 같은 방식으로 이곳 한반도, 휴전선이 아니라 남북 모든 라디오로 40년 전 베를린 장벽을 넘어 David Bowie가 부른 ‘Hero’의 노래가 동서독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순간처럼 감동적인 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에 상상을 더해본다. 아마 아리랑이나 우리의 소원을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르지 않을까?


(출처 : 영화 '고지전' 공식페이지)


   전쟁에는 이것보다 더 많은 소리들이 있다. 아니, 이렇게 소개된 이야기보다 더 슬픈 소리들이 있다. 그런데 들리지 않는다. 들을 수 없다. 있지만 없는 소리 바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절규, 미래가 사라진 청년들의 탄식이다. 우리는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평화는 그렇게 듣기 어려운 소리일 것이다. 



 2024년 8월 28일 김틈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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