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아남다. 남았다.
그라스 트리는
불 속에서 살아...남는다.
바오밥 나무는
가뭄에서 살아...남는다.
살아...있다는 건
남아...있다는 것
남을 줄 알아서
살 줄 아는 것
글자를 몰라서 교실에 남은 아이는
ㅇ과 이응이 아야어여가 이어지지 않아서
남겨졌는데.
ㅇ의 소리를 가장 맛있게 먹고 뱉고
ㅇ과 ㅁ을 그려놓고 사람아래 모난 ㅁ을 쓰다듬고 궁굴려서 ㅇ을 만들어 사랑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나, 나, 하고 입을 아 하고 열다가
남 하고 아래 네모난 ㅁ 의자 하나 둔다.
그 네모난 의자.
누군가를 들이고
빵과 물을 드리고
정과 성을 드리면
나는 남, 다시 나무가 된다
남아서 살아가려면
남이 되어야 한다.
밑동에 도끼질을 당하고 열매를 마구 따가고
잎을 흔들고 밤새 노래를 불러도
늘 옆에 있어 나무가 되고, 남겨지고, 살아간다.
입으로 삼킨 말의 나무는
뾰족 튀어나온 조사와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톱으로 자르고
못과 망치로 두드려
투명의자 기합 처럼 생긴
“나”에
‘ㅁ'의 굳은살이 박혀
“남”이 된다.
서러워
미워하다가
눈물 그치면
그제야 남이 된다.
남, 나무라고 왜 욕심이 없을까
끈적한 눈물을 뿌려
뿌리로 먹는 땅의 힘 다 가지려 하고
높이 높이 잎과 가지를 뻗어
하늘에서 오는 빛의 힘 다 가지려 하는데
아낌없이 준다고 오해받아온
나무는
그렇게 살 줄 남을 줄 알아서
불과 가뭄에
배고픈 것들이 달라붙어도
살아
남는다.
그라스트리처럼
바오밥나무처럼
결국
나일 수 없는
너처럼
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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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인은 나무일 거라 생각했다.
나무가 정말 좋아서 죽으면 나무가 되어야지 했더니 그 또한 복잡하다. 기억과 장소를 이어서 묶인 거추장스러운 인연이다. 나무는 남처럼 인간에게 자연의 동물에게 지구의 대기에게 끊임없이 내 것 없는 양 내어준다. 그렇다고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고 제 생명은 지킨다. 남이 되어 남겨지는 공손으로.
지구는
나무의 별이었고.
욕심 많은 인간은 산산이 세포로 분해되어
용암과 천둥번개 치던 날
지구로 스며들었다.
꿈틀꿈틀 세포는 곤충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뭍으로 기어올라와 도마뱀이 되고 쥐가 되고
다시 모여 원숭이가 되고 인간이 되었다.
나무는 땅속에서 다 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을 그 속 마음을.
한 그루 나무를 껴안는 인디언들은
고해성사를 하며 나무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무는 나무끼리 움직일 수 없는 타자이기만 한 나무는 끼리끼리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해를 한다.
활자와 단어는 번거로운 손발 달린 것들의 천벌
나무는 그냥 이해한다. 그렇게
인간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나무와 인간 둘만 남는 순간까지.
둘만 껴안고 다시 용암 천둥번개 치는 지구 어머니의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그라스트리는 남아서 증언하기로 했고
배고픈 선한 영혼을 남긴 바오밥나무는 여린 숨들을 챙겨주기로 했다. 남처럼 남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인어공주처럼 말은 빼앗겨도
마음은 더 높게 남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