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EON Jan 24. 2023

25화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소중한

뜬금없이 밤낚시를, 그것도 굳이 오늘이여만 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낯익은 차를 발견하고 나는 얼른 달려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사람은 손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준다, “어서 와.”하고.


“죄송해요, 선배.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 괜찮아.”


언제나 그 사람은 나를 배려해 준다, 내가 곤란하지 않도록. 하지만 분명히 재인 선배라면-


“뭐가 괜찮아, 기다리다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고!”


역시나, 하고 나는 웃었다. 뒷좌석에 누워있던 - 사실 그건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였지만 - 재인 선배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친다.


“그나저나 참 오랜만이네, 밤낚시. 예전엔 아버지랑 아저씨 따라서 자주 갔었는데.”


재인 선배의 중얼거림에 그 사람이 조용히 “응, 그러게.”하고 대꾸했다. 나는 모르는 두 사람의 이야기, 두 사람만의 역사. 밤낚시를 제안한 건 그 사람이었다.


“윤수 형은 밤낚시를 정말 싫어했었지.”

“맞아, 그래도 한 번도 빠진 적은 없었잖아? 투덜대면서도 늘 같이 갔었지, 자기만 빠지는 건 싫어서.”

“아무튼 웃긴 사람이라니까, 너희 형은.”

“다아도 우리 형 알지?”


그 사람이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마치 나만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던 소외감이 그 사람의 한 마디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윤수 형도 같이 왔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요즘 일이 많이 바쁜가 봐, 나도 얼굴 보기 힘들어.”


한두 번 정도 보았을 그 사람의 형은 확실히 외모는 그 사람과 많이 닮았지만, 어쩐지 성격은 그 사람보다 재인 선배와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그렇게 셋이서 보낸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나는 모르는 선배들의 이야기.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절대 만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그를 만나보고 싶어.


“재인아, 여기서 우회전이지?”

“응, 우회전해서 계속 직진.”


그 사람의 형과 관련된 - 재인 선배를 꼬드겨 같이 가출을 시도했다가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스스로 되돌아온 이야기라던가, 그 사람의 성적표와 바꿔치기를 했다가 혼쭐이 난 이야기라던가, 재인 선배와 그 사람이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짠, 하고 나타나 구해줬다던가, 하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 이야기를 몇 가지 더 들으며 우리는 교외의 저수지를 향해 달렸다. 창밖으로는 드문드문 가로등이 스쳐갈 뿐 온통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트렁크 열어줘, 우선 텐트부터 치자.”


한적한 저수지에는 이미 밤낚시를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재인 선배와 그 사람이 텐트를 치는 사이 나는 트렁크에 있던 작은 종이 박스들을 그 옆으로 옮겨놓았다.


“이건 뭐예요?”


나는 종이 박스 속의 작은 플라스틱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아, 그건 열면 안-”


그 사람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상자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상자를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하지만 그 행동은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들고 말았다, 서로 뒤엉켜 바닥을 꿈틀대며 기어 다니는 저것들은! 나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뒤로 물러나, 다아야.”

그 사람이 내 앞을 막아선다. 그리고 재인 선배는 그것들을 지켜보더니 “어쩌지?”하고 곤란한 듯 그 사람에게 묻는다. 그 사람은 나를 뒤로 밀어내고 박스 안에서 장갑을 꺼내 재인 선배에게 던진다.


“어쩌긴, 주워 담아야지.”


그 사람의 말에 재인 선배는 울상을 짓는다.


“내가?”

“그럼 다아가 해?”


재인 선배는 투덜거리며 장갑을 끼고 그것들을 상자에 주워 담기 시작한다. 돕고 싶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나를 보며 그 사람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으니까, 대신 텐트 안 정리 좀 부탁해.”


그렇게 말한 후 그 사람도 장갑을 끼고 재인 선배를 돕기 위해 다가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텐트 안에는 정리할 게 하나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언제나 다정한 그 사람의 배려.


“앞으로 말 안 들으면 네 가방을 이 녀석들 집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불쑥, 재인 선배의 얼굴과 ‘그것‘들이 담긴 상자를 들고 있는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는 몸을 뒤로 젖혔다. “장난치지 마.”하고 뒤에서 그 사람이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낚시 가르쳐줄게.”


재인 선배가 가볍게 텐트를 퉁퉁, 치며 말했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언제 그런 소동이 있었냐는 듯 상황은 깨끗이 종료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옮겨놓은 종이 상자 옆에서 낚싯대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사람은 빙긋, 웃는다.


“걱정 마, 미끼로는 이것들을 쓸 거니까.”


그 사람이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작은 새우와 떡밥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 고기가 잡혀요?”

“음, 글쎄.”


우리의 말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의 저수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재인 선배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덥썩, 내 팔을 잡는다. 깜짝 놀라서 팔을 빼려 하자 재인 선배는 손에 더 꽉, 힘을 준다. 그리고는 웃으며 원통형의 무언가를 꺼내든다.


“뭐, 뭐예요?”

“독하거든, 이곳의 모기는.”


나는 잔뜩 경계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묘한 향기를 가진 액체가 내 팔에 골고루 뿌려진다.


“꼬맹아.”

“네?”

“아무리 고민해봐도 정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윤후한테 맡겨.”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아. 저 녀석이라면 널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서, 선배-”

“인정하긴 싫지만, 저 녀석이라면 믿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재인 선배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고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목 아프지 않니, 계속 그렇게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웃음 띤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내일 되면 목 좀 아플 거다.”


그리고 재인 선배가 놀리듯 덧붙인다. 우리 셋은 낚싯대를 하나씩 앞에 두고 나란히 저수지를 바라보고 앉아있다. 낚시를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지만, 낚싯대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늘따라 입질 한 번 없네, 졸린데.”


그렇게 말하며 재인 선배는 커다랗게 하품을 한다. 재인 선배는 평소와 달리 유난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아는 선배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이런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게, 이상하네. 많이 지루하지 다아야?”


그 사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나는 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낚시가 지루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을 뿐.


“안 되겠다, 나는 들어가서 좀 자야겠어.”

“응? 벌서 자려고?”

“어제 새벽까지 게임했거든, 피곤해.”


재인 선배는 자신이 덮고 있던 담요를 내게 건넨 후 비틀거리며 텐트로 걸어간다. 그 사람이 재인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정말 많이 피곤한가 보네.”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스산한 울음소리, 저수지를 둘러싸고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움직임, 수면의 잔잔한 일렁임을 따라 흔들리는 케미라이트의 희미한 빛. 


“참, 다아야.”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다급히 부른다. 내가 돌아보자, 그 사람은 싱긋, 웃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웃었다.


“생일 축하해.”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주 달콤하게.


“내가 첫 번째로 축하해 주는 거지?”


그 사람이 재인 선배가 풀어 놓아둔 손목시계를 가리킨다. 시곗바늘이 막 12시 정각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선물은 저거야, 이미 봐버렸지만.”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하늘을 가리킨다.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뜬금없이 밤낚시를, 그것도 굳이 오늘이여만 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별빛이 다정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그 사람의 마음처럼.


“선배, 스케일이 엄청 크네요. 저 별들, 이제 모두 제 거예요?”


멍청한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말에 그 사람은 숨죽여 웃는다.


“좋을 대로 생각해.”


그리고 우리는 마주 보며 조용히 웃었다, 행여 웃음소리에 붕어들이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정말 기뻐요.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소중한, 최고의 선물이에요.”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래도 역시 명품 가방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네요.”


그 사람이 놀란 척을 하며 “그러니? 다음에는 꼭 명품 가방으로 준비할게.”라고 장난스런 내 말을 받아준다. 너무 능청스러운 그 사람의 맞장구에 나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엔 붕어가 달아나든 말든.


“농담이에요, 선배.”

“에이, 진심인 거 같은데?”

“진짜 농담이에요!”


다시 한번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멀리 오지도 않았는데 하늘이 정말 아름답네요.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아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기쁘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픈 걸까? 아마도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지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진 다음, 그 후를.


“별이 쏟아질 것 같아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을 것 같은 마지막 말을, 나는 다시 힘주어 말했다. 그 사람은 조용히 “응.”하고 대답한다. 아마 그 사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좀 출출하지 않니?”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더 오랫동안 이 미소를 보고 싶어서 나는 내내 도망치기만 했었다. 겁쟁이의 말로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밝게 웃으려고 애쓰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인이 깨워서 라면 끓여 먹을까?”


한 번도 ‘그 후‘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로서는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조차도 버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미처 몰랐다, 우리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더라도 단지 그것뿐이라는 것을.


“제가 가볼게요.”


나는 벌떡, 일어나 텐트 쪽으로 달려간다.


“조심해, 그러다 넘어지겠어.”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선배, 자요?”


저 녀석이라면 널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야. 재인 선배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그 사람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걸 알기에.


“같이 라면 먹어요!”


그리고 그날, 우리는 결국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 Unsplash, Jackson Hendry


이전 04화 24화 자그마한 생일 파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