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울고 싶다

by 비오이영

40주가 지났고, 유도분만 27시간을 이겨(?) 내고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게나 배를 쓰다듬으며 보고 싶다고, 그 배에 대고 속삭였던 아이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 있다더라. 그 기적이란 아이가 통잠을 자주는 것이다. 통잠이란 또 무엇인가, 아이가 깨지 않고 내리 연달아 자는 것인데,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잠 때문에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뱃속의 아이를 품었을 때 주변에서 그렇게나 많이 자두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는 잠이 없는 건지, 예민해서 그런 건지 그렇게나 자주 깼다.


등센서가 또 있다더라. 등센서는 또 무엇인가, 눕히면 깨버리는 것이다. 눕혀서 재워야 한다, 수면교육을 해야 한다, 재우는 방법을 공부해야 하다니... 잠이 많은 편인 나는 잠을 못 자니 정말이지 너무, 너무 힘들었다. 정신의학과에 가면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

"잠은 잘 주무세요?", "식사는 잘하시나요?" 대표적인 질문이라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잠, 식사는커녕 잘 씻기나 하면 다행이다.


말을 못 하는 아이는 배가 고프거나 어디가 불편하다면 울음으로 표현을 한다. 코로나가 한창 돌던 시기라 외출도 잘 못했다. 유모차 거부, 아기띠 거부도 있고 워낙 잘 우는 아이였어서 주변 눈초리가 신경 쓰여서도 잘 나가지 못했다.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자기, 혼자 카페 가서 책 보기 정도였는데 2가지를 못하니 해소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에 아이는 계속 울기만 하니 정말이지 나도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꺼이꺼이 울고 싶었다.


빨래를 하려고 나갔던 베란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낯설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뇌 업데이트 중 - 출처: 조승연의탐구생활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아이가 왜 이렇게 우는지, 자주 토를 하는 편이었는데 젖병 젖꼭지 사이즈가 안 맞아서 공기가 유입돼서 그런 건지, 이앓이 하는 시기에도 운다는데 이가 나는 시기는 언제인지 도대체 언제 그 이가 다 올라오는지, 유아식 재료 주문에 레시피에 궁금한 것도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지 않은가.


"돌 지나면 좀 괜찮아질 거야"

"어린이집 보내면 좀 쉴 수 있어"

"36개월 지나면 확실히 달라져"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에서 듣는 소리다.

내가 원해서 낳았고, 내 목숨보다도 너무 사랑하는 존재인데, 버텨야 한다니... 뭔가 잘못됐다.


복직을 앞두고 20개월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아이마다 적응기간이 다르다던데 보통은 한 달간의 기간을 가지고 적응을 시켜나간다. 처음에는 같이 30분..1시간, 엄마와 분리, 최종 목표(?)는 9시~16시 7시간의 정규시간 적응으로 스케쥴이 짜여져 있다. 20개월의 아가는 어느 정도 알아듣기는 했지만 표현하는 게 부족했던 갓 걸음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가는 매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대오열을 하며 등원을 했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집에 와서 누워있지도 못했다. 꾸역꾸역 쌓인 집안일들을 쳐내고 나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원할 때 아이를 살폈다. 겁에 질려서 나오는 눈빛이, 잠시나마 아이와 떨어져서 쉬고 싶었던 그 마음을 가졌던 나 자신이, 저 작은 아이를 아직 기저귀도 못 뗀 아가를 보내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웠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한 후로 우울증이란 감정이 생긴 것 같다. 그때를 회상하며 이 글을 쓰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왜 그럴 때 자꾸 어린이집 학대, 도우미 학대 그런 기사들이 내 눈에만 띄는 건지,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6개월이 흘렀다.


아이가 너무 많이 울어서 2시간만 보냈지만 정말, 많이 아팠다. 기관에 가면 많이 아프다던데 아직 면역이 약한 아이들과 스스로의 위생을 못챙기는 아가들끼리 작은 공간에서 모여있으니 서로 병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건지..

아이는 기관을 다니는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고, 수족구에 뭔 그렇게 전염병이 종류가 많은 건지 감기도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다던데 아이는 코가 막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무래도 몸이 아프니 기관을 다니기 전보다도 더 칭얼거리고 힘들어했다.


도저히 이런 상황에 복직을 못하겠어서 6개월 연장 신청했다. 아이를 이렇게 떼어놓고 회사를 다닌다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1년이란 육아휴직 기간은 정말 터무니없는 기간이었다는 걸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더라. 1년 육아휴직 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했던 나는 정말 철이 없었던 것이다.



주변 다른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보았다. 맘카페, 구글, 네이버 등 주변 어린이집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관련 키워드로 내용들을 찾고 또 찾아봤다. 주변 놀이터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엄마들에게 무작정 보내는 어린이집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고민 끝에 아이가 28개월이 되던 날,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를 보내 맡기는 것도, 울면서 가는 아이에게도 죄스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 비해 적응을 하는 듯했다. 아주 조금씩 숨이 트였지만 28개월 동안 너무나 지쳐있었던 내 마음은 어둡고, 어두웠다.


천천히 컸으면, 아쉬워하는 엄마들을 보며 얼른 컸으면 바라는 나 자신이 아이에게 미안했다. 너무나 변해버린 내 삶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변해버린 내 일상보다 힘들었던건 아이때매 힘들어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울며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버릴 듯이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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