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김밥"
나와 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스무 살이 넘어도 우리 가족의 전국 여행은 계속되었다. 빈도는 줄었으나 주말이나 공휴일, 어김없이 차를 타고 국내 어디든 가는 행보는 빠르게 흐르는 세월 속에 여전한 행사로 자리 잡아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와 동생이 각자의 이어폰을 끼게 된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자라면서 각자의 취향이 생겼고 그 영역을 방해받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차 안에는 다른 노래들이 각자의 기기에서 재생되게 되었다.
삼국 시대처럼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앞자리의 카오디오는 부모님의 영역, 뒷자리는 각각 나와 동생이 나누어 갖게 되었다. 카오디오에서는 7080 노래나 팝송이 흘러나왔고 나와 동생은 각자의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나의 유선 이어폰에서는 힙합이나 알앤비가, 동생의 에어팟에서는 최신 가요가 새어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차의 스피커가 나와 동생의 음악 감상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의 음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간혹 소리가 커지면 "좀 줄여주세요" 청하곤 했는데 가끔 그게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게 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난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몇 십 년 동안이나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그런데 나와 동생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게 하는 노래가 있다. 우리 가족 넷의 취향이 겹치는 그 노래. 자두의 "김밥"이었다. 사춘기여도 어른이어도 나와 동생은 어김없이 그 노래만큼은 귀에 다시 담고 싶었는지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반응을 보였다. 이 노래? 와. 오랜만이다. 어릴 적 너무나 좋아했던 노래.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나와 동생이 뒤에서 따라 부르던 노래.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 사이에 놓여 양측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 정겨움과 따스함이 가득한 이 재치 있고 부담 없는 사랑 노래는 국민 음식 김밥이라는 제목과 어우러져 맛과 향기를 제공했다.
청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그리고 눈앞에 김밥이 그려지게 해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풍족함을 채워주는 이 곡은 깜찍 발랄한 기타 소리와 동요 같은 베이스 리듬, 혼성 듀오의 친구 같은 듀엣으로 인해 마치 김밥을 먹는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엔 김과 밥에 단무지 하나
요새 김치에 치즈 참치가~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
우리의 사랑도 변해
시간이 지나서 듣는 김밥의 가사는 세상의 변화까지 표현하고 있어서 김밥의 의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이제는 단순한 김밥보다는 패스트푸드와 편의점 삼각김밥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며 '그래도 역시 소풍에는 직접 싼 김밥이지' 생각하게 된다. 학교 소풍 때마다 엄마가 싸주신 김밥, 김과 밥으로만 이루어진 김밥. 도시락 뚜껑을 열면 반질반질한 기름기와 함께 착 달라붙어있던 김밥. 정이 나타나는 한국 음식이라 할 수 있었다.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에 김이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지게 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이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 거야
동생 : (끄덕끄덕) 명곡이야.
나 : 외국인에게 한국 사랑 노래를 소개해 줄 거면 꼭 뽑아야 할 곡이야.
노래가 끝나면 나와 동생은 다시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자신의 취향으로 돌아가지만 김밥을 들은 그 순간만큼은 다시 한번 김밥을 먹으며 가족 다 같이 소풍길에 올라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우리 넷의 취향이 교차하는 그곳. 유년의 기억을 다시 말아 건네는 노래.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 노래를 좋아했던 우리의 모습은 하모니카 소리가 곡을 지탱하고 있듯 우리 가족 여행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자동차가 또 한 번 김밥을 말듯 고속도로를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