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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Oct 30. 2023

어쨌든 바람은 또 불어오고

Queen "Bohemian Rhapsody"


*

"좋은 곡이 될 것 같아."


연인인 메리와 방에 나란히 누운 채 피아노를 올려다보며 건반을 쳐본 프레디는 말했다. 그의 뻐드렁니와 말똥말똥한 눈에서 예술을 향한 집념과 기대가 느껴졌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이었다. 보고 있던 나는 휴가 나온 상병이었고 옆에는 가족이 있었다. 어릴 때 아빠가 운전하던 차에서 카오디오로 듣던 "Bohemian Rhapsody"가 영화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니. 퀸의 이야기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걸 가족과 함께 볼 날이 오다니. 나는 극장이 마치 가족과 함께 탄 자동차 내부 같았고 프레디의 대사에 공감하며 생각했다.


 '좋은 글이 될 것 같아.'


*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이건 현실일까? 단지 환상일까?


2018년 겨울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국에 퀸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인이 사랑한 팝에 반드시 이름을 올리는 동명의 곡 "Bohemian Rhapsody"를 필두로 "Don't stop me now", "We are the champion" 등의 메가 히트곡들이 극장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극장과 음악을 찾았다. 중장년층은 퀸이 한창 활동했던 70년대의 감수성을 멜로디와 함께 곱씹으며 열광했고 청년들은 "이게 퀸이란 밴드의 노래였어?", "아, 이 노래." 하면서 웅장하고 복고적인 음악과 퀸의 성장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영화는 마치 세대의 접점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콘서트 같았고 각종 매체는 이 영화를 올겨울 가족끼리 봐야 할 연말 영화 등이라 홍보하기도 했다.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나는 한 남자를 죽였어요
 Put a gun against his head
 그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방아쇠를 당겼더니 그가 죽고 말았죠


그런데 이런 암울한 내용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히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혹 나는 생각해 보곤 했다.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깔끔하면서도 독보적인 고음, 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창의적인 구성 등 때문일까? 아니면 외국 노래니까 사람들이 의미보다는 멜로디에 더 집중해서 듣기 때문일까? 그렇게 고민한 질문들은 곧 나오는 후렴에 날아가 버리곤 했다.


 Mama ooh, Didn't mean to make you cry
 엄마, 울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내일 이 시간에 제가 돌아오지 않아도
 Carry on Carry on
 계속 살아가세요
 As if nothing really matter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요


슬픈 느낌의 가사와 프레디의 울부짖음, 그리고 모든 게 조각나버린 듯한 피아노 소리는 잡념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불안해하는 영혼들을 꺼내놓고 "자, 다른 생각하지 마. 지금만큼은 너희가 꽁꽁 숨겼던 외침을 내가 대신 외쳐줄게." 하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일들로 심리적 미아가 된 이들을, 외로움에 지친 이들을, 삶의 길을 잃은 이들을 대변하는 듯한 이 호소력 짙은 구간은 암울하면서도 엄마라는 단어 덕분에 어딘가 아련함이 들게 한다. 그 느낌들의 공존이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서 히트곡이 된 게 아닐까. 엄마를 찾아 자신의 상황을 터놓고 싶은 심리 상황은 어느 세대나 겪는 것이어서 2000년대의 청년들도 그 곡에 울림을 받았다는 것이 나의 분석이다.


*

Mama oooh i don't wanna die 
엄마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때로는 제가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라기도 해요 


이 곡에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프레디의 이방인적 심정이 담겨있다! 가사에서 죽인 남자는 동성애를 하던 프레디 자신의 모습이다! 등 사람들은 "Bohemian rhapsody"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중학생이 된 나는 뒤늦게 해석들을 접했고 하루 종일 그것들에 빠져있곤 했는데 많은 해석이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이 있음을 느꼈다. 그건 바로 죄의식이었다. 세상이 정한 올바름의 기준에 프레디는 스스로가 많이 다른 이임을 느꼈고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을 거라는 관점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듯했다.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이입해 보곤 한다. 그렇다면 중학생 때의 나는 이 보헤미안 랩소디에 스스로를 어떻게 이입했을까? 내가 갖던 죄의식은 무엇 때문이고 Mama라고 울부짖고 싶게 하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각 끝에 나는 예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I see a little silhouetto of a man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네
Scaramouche, Scaramouche
겁쟁이야, 겁쟁이야
Will you do the fandango?
정말 그 짓을 하겠다고?

 

예술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내 삶에 여러 균열을 일으킨 것이기도 했다. 충실히 학업만 하던 내가 예술에 빠지게 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하고 수많은 규제로부터 벗어나길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주변에 걱정과 염려를 끼치게 했다. 정말 그런 짓을 하겠다고? 다들 모의고사 성적만 신경을 쓸 때 나는 그 사이에서 홀로 예술을 외쳤다. 사람들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나는 숨어서 만화를 그렸고 시를 썼다. 그러다 보니 머지않아 예술은 죄가 아닐까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를 다른 길로 빠뜨리는 것, 한국에서는 비전이 안 보이는 분야인 것, 부모님과 자꾸 분열을 일으키게 하는 것. 어쩌면 한국에서는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게 예술일지도 몰랐다.


죄책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예술을 계속했는데, 부모님께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예술로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었다. 상병인 나는 유난히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에서 유독 잊지 못할 것 같던 장면이 있었다. 그건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프레디가 가족들을 만나서 무대에 오르기 전 하나의 약속을 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무대에서 키스 보낼게요."


머큐리는 공연의 끝에 키스 날리는 시늉을 했고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며 화면 속의 아들을 지켜보았다.


영화 너무 좋다. 눈물이 다 나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그렇게 말하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삶이 담긴 예술이 이렇게나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엄마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예술의 힘을 실감하며 나는 소망했다. 예술로도 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되어야겠다. 여전히 나는 예술에 빠져있었고 이래도 될까 싶은 죄책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무대에 올라 "Bohemian Rhapsody"를 부른 프레디처럼 계속 예술을 믿어보기로 했다. 간혹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Mama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지난날의 모습들이 매번 떠오른다.


내가 무수히 죽여왔지만 결국 지금껏 살아있는 나 자신들이.


 Oh, baby. Can't do this to me, baby
 오 내게 이럴 수는 없어


*

 any way the wind blows
 어쨌든 바람은 불게 되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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