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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가 내 안에서 흐른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내게 일말의 섬세함과 감수성이 있다면, 그건 분명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일 것이다.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했다. 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고, 닳고 닳은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셨다. 노래방이 흔해진 이후로는 가족 식사나 친척 모임이 끝나면 어김없이 "노래방 가자"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지만, 막상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겨우 한두 곡 부르고 나면 길고 긴 아버지의 원맨쇼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노래방 얘기만 나와도 못 들은 척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혼자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아버지 방에서 흘러나오던 '흘러간 옛 노래' 시리즈는 엄마의 화를 돋우었고, 우리 역시 그만 들었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눈치를 보시던 아버지는 점차 소리를 낮추었고, 노랫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만큼은 아버지가 놓치지 않고 챙겨보던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앉아 시청하곤 했다. 아버지는 출연자들의 구성진 가락에 장단을 맞추며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와 아버지는 참으로 다른 취향을 가졌다. 음악도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서민적인 대중가요를 좋아하셨고, 엄마는 언제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다. 두 분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보다 각자 고집스레 자신만의 음악을 즐겼다. 나는 아버지보다는 엄마의 클래식에 더 마음이 끌렸다. 왠지 더 세련되고 품위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 클래식은 너무나 낯선 세계였을 것이다. 부유한 외가와 달리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아버지는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저 따라 부르기 쉽고 마음을 달래주는 대중가요가 아버지에게는 가장 가깝고 확실한 위안이었으리라. 노래방에서 온몸으로 음악을 즐기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 아버지는 정말 음악을 사랑하셨구나' 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차오른다.


'불효자는 웁니다', '전선야곡', '황성 옛터', '열아홉 순정', '동백 아가씨'처럼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곡들에는 그 시절의 정서와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그 노래 속에서 위안을 얻고, 마음 한구석의 외로움을 달래셨을 것이다. 음악이 주는 위안은, 때로는 어떤 말보다도 특별하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고 글쓰기로 위로를 얻는 내 성향 또한 어쩌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일 것이다. 쉽게 상처받고 예민한 기질 또한 아버지를 닮았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버지는 여리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이 다쳤고, 그 상처는 오래도록 아버지의 마음을 할퀴고 지워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았다.


나도 나이가 든 탓일까. 이제는 전통 가요의 단순하지만 확실한 가사와 애틋한 정서가 오히려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젊은 날에는 낡고 촌스럽게만 여겼던 그 노래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시절의 팍팍한 삶과 고단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았던 낭만과 희망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이다.


어쩌다 듣게 되는 '흘러간 옛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당신이 겪었을 수많은 감정들을 상상한다.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나는 단순히 노래를 넘어선 후회와 미안함을 읽는다. '전선야곡' 속에는 전쟁의 아픔을 이겨낸 아버지 세대의 굳건함이, '동백 아가씨'에서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이제 나는 안다. 아버지에게 음악은 단순히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잊고 싶었던 아픔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젊은 날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그의 노래를 귀찮아하고 외면하기만 했다. 그 무심함이 아버지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뒤늦은 후회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나를 찌른다.


아버지의 노래는 이제 나의 노래가 되었다. 내 안에서도 흘러간 옛 노래가 울린다. 그 노래는 아버지의 목소리이자, 내가 지닌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결국 아버지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씁쓸한 후회와 함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깊게 자리 잡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나는, 이제 그 노래를 통해 아버지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낡은 카세트테이프처럼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흥얼거리시던 멜로디를 따라 부른다.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과 환한 웃음이 떠올리면서. 그의 노래는 이제 나의 유산이 되어 내 안에서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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